오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시이지만, 가장 슬픈 시가 돼버린 작품이 있습니다. 앞으로 수십년을 '2020 3월 고3 전국연합 학력평가 기출시'로 불릴 이기철 시인의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입니다.
이 시가 유독 슬픈 까닭은 '지독한 역설적 상황'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고3 아이들에게 문제지를 나눠줬어요. 사진으로 문자로 만나다가 처음 얼굴을 보게 된 아이들이지만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했지요.
교무실에 올라와 국어영역 문제지 마지막 쪽에 실려있던 시를 읽으니, 기분이 묘했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벚꽃 그늘에 앉아 보라는 아름다운 시를, 벚꽃이 다 져버린 4월에 아이들이 집에서 문제를 풀면서 읽어야 하는 상황이 무슨 벌을 받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지요.
나중에 시를 해설하고 문제를 풀어주기 전에, 있는 그대로의 시를 아이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일단 내려놓고 시 한 편을 오롯이 내 안에 담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힘든 상황에 놓인 아이들과 역시 힘들게 세상에 태어났을 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내일 저녁 학급 단톡방에 밑줄도 문제도 없는 시를 전문과 함께 이렇게 올리겠습니다. 오늘 하루 가장 많이 읽힌 시가 슬픈 시가 되었지만, 다시 희망을 주는 시로 만들고 싶습니다.
"얘들아, 시 한 편을 다시 소개하고 싶어. 어제 국어영역에 출제된 시인데, 이미 읽고 문제를 풀어봤지? 밑줄도 문제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시를 읽어보렴. 힘든 상황일수록 서로에게 '벚꽃 그늘 같은 사람'이 되어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