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생활지도'가 아니라 '생활걱정'을 할 때입니다

- 코로나19 이후의 학급운영 이야기

by 글쓰는 민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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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우리 고3 아이들의 지필고사가 시작됩니다만, 저의 출근길 기분은 조금 가벼웠습니다. 조퇴에 대한 설렘은 아니고, 시험기간이라도 출석부가 깨끗해질 것 같은 담임교사의 기대 때문입니다. (19년 교직 생활 중 부장교사 7년, 담임교사는 12년째네요. 그래서 제 장래희망이 비담임입니다.^^;)

등교 개학하고 어제까지 9일 동안, 각종 출결 관련 서류가 저만큼 쌓였어요. 하루에 평균 3, 4건은 꾸준히 있었지요. 코로나19로 인한 등교중지나 현장체험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과 무관한 질병 혹은 생리 결석과 조퇴, 지각이 다른 해에 비해 많았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 힘든 것이 이해가 되지만 아무래도 한 명 두 명씩 결석이나 조퇴를 해서 빈자리가 늘어나면, '나도 좀 힘든데 집에 갈까'하는 생각이 드는 아이도 생기겠지요. 또 조회에 몇 분씩 습관적으로 늦는 아이도 있고, 가정통신문이나 결석확인서를 제때 안 내서 힘들게 만드는 아이도 있어서 '처음부터 깐깐하게 굴 걸 그랬나? 아직 초반이니 강경대응을 해볼까'하는 궁리도 해봅니다.

그렇다고 이 시국에 조퇴하는 아이를 째려볼 수 없고, 부모님을 대신 설득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라떼는 말이야'하면서 '죽어도 교실에서 죽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은 더 먹히지 않겠지요.


학교에서 이런저런 문제로 고민이 생길 때, 저는 사토 마나부 교수님의 책을 뒤적입니다. 그랬더니 역시 하나를 건졌습니다. ㅎㅎ


배움에 있어서 겸허함과 주의 깊음이 중요한 것은 역동적인 배움의 과정이 바로 다름 아닌 작은 차이를 서로 느끼면서 맞추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배움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깊은 조심성'이라고들 이야기해 왔다. 배움에 대해서 언급한 동서고금의 모든 문헌이 배움의 본질을 깊은 조심성에서 찾고 있다. 자주성이나 주체성, 노력이나 의욕이 배움의 본질이 아닌 것이다.

- 사토 마나부,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51~52쪽


아이들의 생활적인 문제를 지도할 때도, '깊은 조심성'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아이들이 겉으로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교사는 기존의 판단을 내려놓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작은 차이'를 느끼고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죠. 어떤 문제에 대한 획일적인 조치나 예외 없는 대응은, 효과도 미미할뿐더러 교사와 아이들 사이에 마음의 거리만 멀어지게 할 것 같습니다.

'다른 아이는 아파도 조퇴하지 않고, 집이 멀어도 지각 한 번 안 하는데'라는 식으로, 아이들 모두에게 '주체적인 노력이나 의욕' 주입하려고 해도 제 경험으로는 100명 중에 한두 명 빼놓고는 쉽게 바뀌지 않더군요.

그래서 중요한 것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교사의 '수동적 대응'입니다. 사토 교수님은 '배움이라는 능동적인 활동도 그 기초에는 대응이라는 수동적인 반응이 기초가 되고 있다'라고 같은 책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주의 깊고 민감한가가 읽기의 모든 것을 결정하듯이, 한 아이의 현재의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과거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관계를 잘 풀어가는 열쇠가 될 것 같습니다. 성급하게 고칠 것을 조언해 주고 공권력(?)을 동원하기 보다, 당장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소리 없는 소리를 듣기 위해' 모든 감각을 동원하면 어떨까요?


이 모든 과정에는 역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당장 출결이 안 좋고,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를 담임교사로서 가만히 두고 봐야 할까요? 저는 '지도가 아니라 걱정'을 하며 시간을 벌려고 합니다.

"몸이 자주 아파서 지각하고 조퇴를 많이 해서 걱정이다."라고 진심을 담아 말해주고, 아이의 반응 혹은 대응을 살피는 것이지요. 또 '흡연지도'도 '흡연걱정'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아요. "혹시라도 코로나19 감염되면 흡연자가 훨씬 더 위험한 거 알지?"라고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면서요. ㅋㅋ

코로나19 이후에는 특히,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자신을 가장 잘 알고 가장 많이 걱정해 주는 선생님이 한 명은 있어야겠지요. 그 사람이 담임교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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