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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수업에서 '경쟁과 보상'은 더욱 위험합니다.

by 글쓰는 민수샘

'헌혈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면 헌혈 가능성은 분명히 낮아진다'라는 연구결과에 금방 수긍이 가시나요? 저도 예전에 헌혈 사은품으로 빵과 우유, 영화표를 받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햄버거 세트 쿠폰, 블루투스 스피커 등을 준다고 하네요. 헌혈자가 부족하다 보니 '사은품 1+1' 행사(?)를 하는 헌혈의 집도 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1+1 행사'를 하는 곳은 마음이 블편합니다. 꼭 필요한 환자를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헌혈을 하고 싶어서 들어가려고 해도, 왠지 다른 목적으로 온 사람처럼 보일 수 있어서 주저하게 될 것 같아요.


온라인 수업에서도 '경쟁과 보상'보다 '협력과 기여'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말하면서 참여를 권유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을 읽게 되었고, 처음에 나온 질문도 바로 이 책에서 인용했어요. 가치 있는 어떤 행동을 유도할 때, 눈에 보이는 대가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여러 가지 연구결과가 인상 깊었습니다. '어딘가에 기여할 때 드는 기분은 돈보다 훨씬 훌륭한 보상이 되기 때문이다'라는 이유도 수긍이 갔습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거나 탐욕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는 많고, 따라서 희망은 있다. 경쟁에 대해서만 보상받는다면 사람들은 계속해서 경쟁할 것이다. 그러나 협력할 기회가 생긴다면, 계속해서 협력할 것이다. 서로 협력할 때 더 나은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 많이 협력할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각자의 믿음 체계를 바꾸고 더 많은 희망을 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는 아이들에게 굳이 경쟁심을 유발하는 수업도구와 보상 시스템 위주로 수업을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더욱 확실해졌어요. 물론 중학생이나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많은 고등학교에서는 '경쟁적 요소'가 동기를 유발할 수 있고, 즉각적인 보상이 재미와 활력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과 보상'에만 의지하는 수업은 아이들의 자발성을 증발시킬 수 있고, 평등한 친구 관계를 흔들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코로나19 이후의 학교에서 대화를 나누며 공감하고, 모둠활동을 하며 협력할 기회가 없어진 아이들에게 경쟁심을 유발하는 온라인 퀴즈는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일방적인 강의나 획일적인 평가보다는 낫겠지만, 교사가 열심히 만든 퀴즈가 결과적으로 랭킹을 매기고 서로 비교당하는 경험을 줄 수 있고요. 순위가 정해지는 게임에 아예 참가하지 않는 아이들도 늘어날 것이 뻔하지요. 실시간으로 자신의 이름과 낮은 점수가 화면에 계속 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의 마음을 교사들이 헤아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퀴즈앤'으로 교실에서 수업할 때는, 한 문제를 풀면 바로 맞힌 사람의 이름과 점수가 나오고 마지막에 종합 순위와 점수가 나오는 옵션을 활성화해서 진행했습니다. 퀴즈앤 활용 수업이 처음이고, 고3 2학기라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참여시키기 위해서 약간의 경쟁심을 유발한 것이지요.^^; 그래도 문제당 시간제한을 하지 않았고, 데이터 사용이 어렵거나 휴대폰에 문제가 있을 경우, 또 그냥 아이들이 원하면 두 세명이 한 팀이 되어 퀴즈를 푸는 것도 허용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순위에 높아서 아니라, 열심히 참여한 친구들을 위해 손뼉을 쳐달라고 부탁했고요.


제가 맡고 있는 고3 아이들은 다음 주에 온라인수업을 듣습니다. 퀴즈앤의 '미션' 기능을 이용해서 각자 집에서 교재의 시와 소설을 읽고 퀴즈를 풀게 되지요. 이번에는 옵션 설정에서 '제한시간 해제, 재도전 사용, 랭킹 화면 비노출'에 모두 'ON'을 클릭했어요.



'랭킹 화면 비노출'을 'OFF'로 할 경우에는 아래 사진처럼, 한 문제를 풀고 나면 자신의 중간 점수가 나오고, 문제를 다 풀면 3학년 모든 아이들 중에 자신의 순위가 나옵니다. 각자 집에서 퀴즈를 풀면서도 다른 친구들과 비교당하는 기분이 들겠지요.






'랭킹 화면 비노출'을 사용하면 아래처럼 이번 퀴즈에서 자신의 점수만 나오고, '재도전'을 눌러서 이전의 자신과 경쟁할 수 있습니다. 친구가 아니라요.^^ 평가가 필요하다면, 개별적으로 과제를 내주거나 쪽지시험을 보면 됩니다.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협동심에 불을 붙이는 문화와 시스템'으로 얼마든지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19라는 재난을 이겨내고,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는 역할이 필요한 때입니다. 교사가 먼저, 당장 자신에게 생기는 것이 없어도 기꺼이 협력하고 기여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을 그런 존재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교사의 철학이 담긴 퀴즈'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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