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정주행중^^
코로나19 이후의 학교에서, 그래도 잘 버텨낸 저에게 주는 추석선물로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정주행하고 있습니다. 남은 2020년, 아니 그 이후까지 다시 열심히 살며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이 드라마에서 얻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사이코로 그려지고 있는 동화작가 고문영은 정신병원 환자들에게 '동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동화란 현실 세계의 잔혹성과 폭력성을 역설적으로 그린 잔혹한 판타지예요. … 예를 들어 볼까요. 흥부전의 교훈은 흥부는 장남이 아니라서 가난했다. 즉 장남에게 몰빵한 유산상속의 문제를 다루고 있죠. … 인어공주의 교훈은 약혼자 있는 남자를 넘보면 천벌을 받는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교훈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속병이 안 나려면 뒷담화를 까라~"
이어서 바로 등장하는 갈매기 두 마리가 병원 위를 날며 비둘기를 뒷담화 까는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저도 이젠 뒷담화 좀 까보려고요.ㅎㅎ 예상을 뛰어넘는 거침없는 대사와 특수효과를 이용한 재기발랄한 편집 등을 보면 이 드라마의 작가나 PD 역시 정상 범주를 넘어서는 '사이코' 같지만, 너무 신선해서 괜찮습니다.
1년에 드라마를 두세 편 정도 선택해서 보는데, 대부분 깊은 상처를 받은 인물이 비슷한 상처를 지닌 다른 인물을 만나 치유하는 이야기에 끌립니다.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는 엄마와 연인에게 버림받은 미혼모이고, <사랑의 불시착>의 윤세리도 엄마를 잃고 다른 가족들에게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는 인물입니다. 지독한 상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고 스스로를 학대하기도 하지요.
제가 문학을 전공해서인지 '상처받은 인물의 찌질하고 모순투성이 모습'과 그 모습까지도 받아들이고 감싸는 사랑에 웃고 울며 감동하게 됩니다. 대신 평면적인 인물 설정과 주인공의 다음 대사를 두세 번 연속으로 알아맞히게 되는 드라마는 1화를 끝까지 보지 않고 꺼버리지요.
그런데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제가 입버릇처럼 잘 하는 말인 ^^;) '추노 이후의 최고의 드라마'입니다. 영화보다 깊이 있게 인물들의 행동 이면의 심리에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을 잘 살려서 만들었어요.
현재 7화까지 봤는데, 더 이상 안 봐도 될 만큼 좋은 엔딩이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해피엔딩을 아닌 결말을 보면 며칠 동안 자려고 누워도 생각이 나고 계속 가슴이 아프거든요. 그래도 끝까지 계속 보겠지만, 7화의 엔딩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을 계속 데워주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을 것 같아요.
자신도 상처가 많은 문강태가 고문영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칭찬하는 장면인데요. 고문영이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정신질환 환자에게 쏘아붙였던 것이, 오히려 환자의 상처가 아물도록 돕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랑보다 더 가까운 우정을 느꼈답니다.^^
"잘 했어. 고문영."
"뭐가?"
"니가 끊을 수 있게 도와줬잖아."
이 장면을 보니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이란 책에서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우울한 이유를 묻는 대신 무조건 약을 처방하는 실태를 비판한 부분이 떠올랐어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울하다'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외롭다'는 것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저 역시,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들의 우울함에 공감하지 못하고 외로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지 못했던 기억이 더 많습니다. 의사가 처방전을 써서 주듯 뻔한 방법으로 치료하려고 했지,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의 상처에 같이 아파하며 손을 내밀 수 있는 치유까지 나가지 못한 것이지요.
복잡한 접근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생활에서 편하게 대화하며 함께 배우고 어려움을 견디는 친구들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울한 아이일수록 친한 친구 한두 명이 아니라 좋은 친구들과 접촉하면서 함께 생활하도록 교실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교사가 학생에게 평가하듯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강태가 고문영한테 그랬듯이 친구가 친구에게 어깨를 툭 치며 "잘 했어" 말해주는 엔딩을 아이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에서 많이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한 정신과 의사는 그동안 환자들을 진료해온 모든 시간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 의사는 유년시절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이야기를 털어놓게 하는 방식으로 환자 진료를 해왔다고 한다. 만일 환자들에게 새로운 친구를 찾아주기 위해 힘썼더라면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자책했다."
-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