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 같은 드라마는 못 만들어도,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좀 심심하지만 평등한 나라'에서 살게 되면 좋겠습니다. 드라마에서 심각하게 묘사하고 두 주인공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사실은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놓은 어른들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어요.
먼저 고문영(서예지) 작가의 불행과 외로움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부모로부터 오게 됩니다. 애초에 큰 부자가 없는 나라, 깊은 산속에 궁전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정말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나라였다면 어린 고문영의 지독한 외로움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죽 했으면 고문영 스스로 자신의 집을 '저주받은 성'으로 불렀겠어요.
학교에서도 문영이는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라고 생각하며 진정한 친구를 만들지 못합니다. 강태가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도 잔인하게 내쫓았죠. 어차피 성 안에 사는 공주와 성 밖에 사는 평민의 아이는 친구가 될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고문영이 동화를 쓰면서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고 이겨내려는 노력은 정말 눈물겹고 아름다웠어요. 이러한 과정을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드라마를 위해 새롭게 창작한 동화 몇 편을 통해 감동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정말 물아일체, 아니 '동드일체'의 경지입니다. (드라마에서 대본, 즉 작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80% 이상인 것 같아요. 역시 문학의 힘은 셉니다. ^^)
문강태(김수현)의 불행은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으면 인격을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로 인해 더욱 처참해집니다. 자신의 먹을 짬뽕 값도 아꼈던 엄마를 잃고, 두 형제는 헤어질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합니다. 아이들의 감정에 대한 이해, 인간적인 배려 같은 것 전혀 없이 '동생은 보육 시설로, 형은 장애아동센터로 보낸다'라는 말을 어른들이 하지요. 그렇게 어른들로부터 탈출한 가난한 형제는 방치된 채 트라우마 속에서 성장합니다.
부자들이 뽑은 사람들이 다시 부자들을 위해 돈을 쏟아붓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강태와 상태는 엄마를 허망하게 떠나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개인에게 그런 불행이 닥치더라도 따뜻하게 감싸 안는 공동체가 살아있고 사회적인 지원이 있었다면 형제는 도망 다니는 삶을 살지 않았겠지요.
질병, 범죄, 교통사고, 천재지변 같은 불행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것이 우리 현대인들의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더 평등하고, 소수자와 약자에게 더 너그럽고 관심을 갖고 지원하기를 소망합니다.
넷플릭스에서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2020년 '가장 많이 본 콘텐츠' 순위 10위안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판타지이긴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수출하는 것이 마냥 자랑스러울 수만은 없네요. <사랑의 불시착>의 흥행 뒤에는 분단국가의 아픔이 그늘져 있고, <동백꽃 필 무렵>의 대박 속에는 가난으로 인해 자신의 딸을 고아원에 맡길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한이 서려있습니다.
국위선양(?), 외화벌이를 안 해도 좋으니까, <사이코지만 괜찮아>처럼 어린아이들의 아픔과 외로움이 드라마의 소재로 쓰이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좀 심심한 나라라도 괜찮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