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더 좋은 나라가 됐을까요?
며칠 전 미국 대선의 개표 뉴스에서 네바다주에서 두 후보가 경합을 벌인다는 말을 듣다가, 엉뚱하게도 네바다주의 최대 도시인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한 고등학교가 떠올랐습니다. 이름도 신비로운 데저트 오아시스 고등학교(Desert Oasis high school)인데요.
제가 이 학교를 아는 이유는, 2017년 6월에 방송된 tvN <수업을 바꿔라>에 소개된 모습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데저트 오아시스 고등학교는 2008년에 개교한 공립학교인데, 미국답게 전체 학생이 3000명이 넘는 거대한 학교였어요.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점심시간의 살벌한 풍경이었습니다. 1500명씩 나눠서 점심을 먹는데, 시간은 단 20분입니다. 감옥도 아닌데 식당으로 통하는 문에 셔터가 자동으로 내려와서 아이들을 가두고, 음식도 얼음처럼 차가운 핫도그와 과일, 채소였어요. 아들과 함께 이 학교를 방문한 배우 성동일씨는 "더운 사막에서 먹는 냉동의 맛'이라고 평가했지요.
미국처럼 땅도 넓고 부자인 나라가, 3000명을 수용하는 큰 학교가 아니라 500명씩 다니는 6개의 고등학교를 만들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요? 나름 사정이 있겠지만, 학생 한 명 한 명의 인권과 잠재력을 우선시하는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면 비용이 더 들더라도 그런 오아시스 없는 사막 같은 삭막한 학교를 만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큐멘터리에서 수업 장면을 볼 때면, 항상 자리배치를 눈여겨보는데요. 미국의 공립학교들은 대부분 시험 대형으로 혼자 앉아서 수업을 진행하고, 그룹활동을 하더라도 인종별로 같은 모둠에 앉아서 활동을 하더군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혹은 운동을 할 때도 학교에는 작은 아프리카, 작은 남미, 작은 아시아 대륙이 곳곳에 생깁니다. ㅠ.ㅠ
미국 대선을 계기로 다시 찾아본 데저트 오아시스 고등학교 역시 그런 모습이 보여서 좀 우울했습니다. 교실이나 체육관 같은 시설이 좋고, 범죄수사학이나 경영 시뮬레이션 같은 다양한 선택 과목이 있어도 왠지 그곳의 아이들이 측은하게 느껴졌어요. 특히 식당 구석 바닥에 혼자 앉아 차가운 음식으로 점심을 때우는 남학생의 모습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디즈니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는 강하지만, 다른 나라에 영감과 호감을 주는 소프트파워는 매우 취약한 나라가 돼 버렸습니다.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에 대응하는 개념인 문화적 영향력이 거의 없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이번 미국 대선은 다시 한번 실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트럼프가 했던 인종차별, 성차별적인 막말도 그렇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거의 결과에 불복하는 모습은 다른 나라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지요.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트럼프는 금수저 중의 금수저로 태어났습니다.유년시절 살던 집에 침실은 총 23개, 욕실은 9개라고 하고, 가정부와 운전기사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가 13살에서 18살까지 다닌 학교는'뉴욕 군사학교(New York Military Academy)'입니다. 트럼프가 이전 학교에서 선생님을 때리는 등 말썽을 피우자 아버지가 이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고 해요. 이름만 군사학교이지 군대식 제복을 입고 군인처럼 생활하며 대학 입시를 대비하는 학비가 연간 4000만 원이 넘는 사립학교라고 합니다.
'도련님'처럼 지낸 초등학교 때도 그랬겠지만, 뉴욕 군사학교를 다니면서 10대의 트럼프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유색 인종의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차단당하게 됩니다.
북유럽의 나라들처럼 사립학교가 거의 없고, 집에서 가까운 공립학교에서 부잣집 아이와 막 이민을 온 노동자 가정의 아이가 어울려서 함께 배우는 학교를 미국인들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만약 '어린이 트럼프'에게 평범한 흑인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겠지만, 더 여유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고 미국은 더 평등하고 안전한 나라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아이와 임대주택에 사는 아이가 같은 교실에서 어울려 놀다가 어깨동무를 하며 집에 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게 된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요. 어떤 학교가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할까요? 계속 고민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