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 제목 빼곤 괜찮은 책

by 글쓰는 민수샘



<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는 쉽게 내 책이 된 만큼, 제대로 읽기가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한두 달 전쯤, 수업을 마치고 왔더니 책상 위에 놓여있었는데 학교에서 사준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저자 역시 제 기준에는 별로였습니다. 애플의 수석 고문이자 전 교육 담당 부사장인 존 카우치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 신화를 만든 초기 멤버 중의 한 명이고, 제이슨 타운은 하버드대학의 심리학과 교육학 연구원입니다. 원래 미국의 상업주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구석에 치워놓았지요.


그러다가 수능이 끝나고 좀 여유가 생겨서, '도대체 왜 교실을 없애려고 안달이지, 아이패드와 능력주의 심리학을 더 팔아먹으려는 수작을 밝혀내겠어'하는 꿍꿍이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시류에 편승하기 위해 출판사가 정했을 자극적이고 단정적인 제목 말고는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밑줄도 많이 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메모도 했어요.


원제인 <Rewiring Education>을 직역하면 '교육 재설계' 정도가 될 것 같은데, 저자가 'rewire'를 굳이 쓴 이유는 전기 배선을 다시 하듯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연결을 다시 하자'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무엇과 무엇을 다시 연결해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날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려면 전문지식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 디지털 네이티브에게는 콘텐츠(content) 전문가인 교사보다는 맥락(context) 전문가인 교사가 더 필요하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맥락 속으로 확실히 들어가는 사람이야말로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 그래서 교사의 새로운 역할은 수업을 가능한 한 학생들의 세계와 관련짓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학생들이 정말로 배우고 싶어 하고 계속해서 학습에 몰두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기술은 과연 교사를 대체할까, 236쪽)


바로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는 21세기에 태어난 학생의 삶과 배움의 대상인 세계의 연결입니다. 당위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주제 자체를 반드시 학생들의 삶과 관련지을 필요는 없고, '주제를 전달하는 방법'을 관련지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학생의 경험이나 흥미를 강조하다 보면 수업에서 다루는 텍스트의 수준이 낮아지고 활동도 단순한 것이 되기 쉬운데,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언급합니다.


셰익스피어 수업을 할 때 아무런 무대 연출 없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감상하는 것이지요. 대사에 어울리는 동작과 어조, 음향 효과를 연구해서 모둠별로 짧은 영상 만들기, 작품 속 인물의 심리를 분석해서 해시태그를 이용해서 표현하기, 작품을 다룬 두 영화를 보고 차이점과 공통점 찾기 등입니다. 배움의공동체에서 말하는 활동적, 협력적, 표현적 배움을 위한 점프 과제와 비슷합니다.


이러한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교사의 IT 기술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학생의 삶과 연결 짓는 교사의 교양과 개별 학생에 대한 관심입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콘텐츠의 내용을 구성하기 위해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탐구할 수 있도록 '맥락'을 잘 짚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잠재력을 드러낼 수 있게 이끌기보다, 우리가 추정하는 바에 근거해서 그들의 잠재력을 제한한다. … 마치 무언가로부터 멀어질수록 더 단순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모두가 똑같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할까, 60~61쪽)


맥락을 잘 살려서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역시 '아이들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아이들이 왜 배우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O반 아이들 참 무기력해", "O반 OO이는 아무 것도 흥미가 없어"와 같이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교실이 없는 시대'가 아니라 '무조건 외우고 경쟁해야 하는 교실이 없는 시대'로 향해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 괜찮은 책이라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수능 전날, 고3 아이들 이름으로 이행시를 써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