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곁을 떠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주민등록초본을 처음으로 제대로 읽었습니다.
은행 창구 앞 소파에 앉아
한 손엔 번호표를 들고 다른 손엔 초본을 들고
부모님의 땀과 눈물로 출력된 생의 기록을 한 줄 한 줄 눈에 담았습니다.
태어난 지 1년이 지나서 기록된 출생신고일이며
쌍문동, 창동, 수유동, 목동, 개포동, 세곡동 같은 동네 이름들이
3쪽 가득 적혀있었습니다.
전학을 또 가냐고 투정 부리고
집이 학교에서 멀어지고 좁아진다고 벽을 걷어차던 10대 시절이
빼곡한 주소 사이를 비집고 살아났습니다.
주민등록등본과 초본의 차이를 안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부모님처럼 부동산을 돌고 대출을 알아보며
또 다른 초본을 두 발로 쓰면서 어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오늘
많은 서류들 중에 초본이 눈에 띈 것은
아직도 모르는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이 많다는 것을
누군가 깨우쳐 주려 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