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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Nov 17. 2021

김구 선생님이 꿈꾸던 나라는 '수능대박'이 없는 나라

 BTS, 영화 <기생충>, 그리고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연달아 세계적인 대박을 터뜨리자, 여기저기서 '김구 선생님'을 소환하기 바빴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실현되기를 원한다."


  김구 선생님이 꿈꾸던 '문화 강국'이 실현되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최고입니다!"라는 국뽕이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었지요. 저 역시 아이들에게 "K 컬처는 물론이고 K 방역, K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에서 부러워하고 있다"라고 수업 시간에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수능 고사장 설치를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 청년들과 청소년들이 김구 선생님들이 바라시던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언론과 유튜브에서 요란하게 떠드는 그 문화의 힘으로 우리 아이들이 더 행복해졌을까, 누가 묻는다면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얼굴을 들기 힘들 것 같습니다. 문화는 물론 무력, 경제력, 과학기술력 모두가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은 여전히 내신과 수능 모두 '상위 4%, 1등급'이라는 높은 철책을 뛰어넘기 위해 총성 없는 전투를 치르는 중입니다.


  "현재 인류가 불행한 근본적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이러한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가 있을 따름이다."


  김구 선생님의 통찰처럼,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폐쇄적인 학벌주의 사회 속에서 기계적인 평등만을 강조하는 수능 만능론을 믿으면서, 한국인들은 인의와 자비와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살인적인 입시경쟁을 기본값으로 만들어 놓고 의심하지 못하게 하면서, 경쟁에서 탈락하는 아이들을 루저 취급하며 비웃는 문화는 다른 나라가 모방하려고 노력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잔혹한 폭력 속에서도 '높은 문화의 힘으로 세계의 모범이 되는 대한민국'을 꿈꾸던 김구 선생님을 '한가한 소리나 하는 몽상가'로 치부하던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내일 수능 감독을 열심히 하고, 제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이 수능도 잘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수능 전날이면 저는 꼭 이런 망상에 빠집니다.


  지금 우리나라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경제력도 아니고, 등급과 대학 이름으로 결정되는 학력도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입시경쟁, 대학서열을 없애도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고, 더 강한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상상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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