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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Nov 22. 2021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울어도 괜찮은 광장'으로

- <능력주의와 불평등> 책 읽기

  지난주 수능 감독을 마치고 후유증이 계속 남아있네요.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듭니다. 매년 이맘때면 수능 감독에 관한 민원이 뉴스에 나오는데, 감독관 교사와 학생·학부모와의 갈등은 비극적입니다. 교사 단톡방에는 '1234교시 모두 정감독을 해서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고 영혼이 털리는 것 같았다'라며 '이렇게 감독을 배치한 고사장 학교의 교무부장에게 강하게 항의를 하고 왔다'라는 글도 올라옵니다.


  그래서 책장에 모셔져 있던 <능력주의와 불평등>을 꺼내 읽었습니다. 전쟁터 같은 수능의 화염이 꺼지기는커녕 더 불타오르고 있기 때문에 불에 덴 마음을 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2020년 11월에 출간된 아직 따끈따근한 책인데, '능력주의'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운영 원리와 신앙의 영역이 되었는지 밝히고,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모색해 보는 다양한 글들이 실려있습니다.





  저는 맨 처음에 실려있는 '교육에 필요한 것은 탈능력주의'라는 청소년 운동활동가인 공현님의 글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능력주의의 대표적인 비유는 달리기 등의 경주이다. 이때 우리는 출발선(기회)이 같았는지, 규칙(과정)은 공정한지, 이로부터 도출된 서열과 승패(결과)가 정당한지를 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나 삶은 개개인이 참가하는 경주나 시합이 아니다. 경주나 시합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부일 뿐이다. 사회와 삶 전체를 경주로 보면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속도와 기록을 재기 위한 시험과 평가로 생애를 채워 나가야 한다. 불필요한 경쟁과 무의미한 고통이 다수에게 요구된다.


  학교나 가정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은 누가 왜 만들었는지, 결국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지에 대해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대신 그럴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라고 하지요. 하지만 수능을 정점으로 한 우리나라의 능력주의 뒤에는, 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권력(국가, 기업)의 이익을 위한 시스템이 숨어있다고 지적합니다.


  숨어있는 시스템에 관한 깊이 있는 사고와 대안적 실천은 수능 1등급을 못 받는 루저들의 변명으로 조롱을 당하기 쉽고, 정작 수능 시험 때문에 고통을 받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서로를 탓하며 그야말로 '불필요한 경쟁과 무의미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평등을 이야기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주 레인의 바깥과 주변을 넓게 보아야 한다. “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운동장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 운동장에서 기울기를 조절하려는 싸움은 결국 파이 싸움이 될 뿐이다. 따라서 평등은 각기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운동장을 해체시키고 재구성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경주의 세계관을 벗어나는 다른 세계관을 이야기하고 실현하는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존 레넌의 노래 'Imagine'의 가사처럼, 누군가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dreamer'라 말할지라도, 학생 모두를 '기울어진 운동장'의 트랙에 세우는 시스템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고 싶습니다. '기울어도 괜찮은 광장'에서, 아니 '기울어져서 더 편한 잔디밭'에서 우리 아이들이 더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능력주의와 불평등>은 '고통스러운 희망'을 발견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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