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수샘의 장이불재 Jan 07. 2022

교사에게 방학은 자기 뇌에 씨앗을 심는 시기입니다.

- <집사부일체>에서 배상민 디자이너에게 배운 것들

  2022년 1월 7일 금요일, 20번째 맞이하는 겨울방학의 첫날입니다. 하지만 몸은 아직 출근 모드인지 6시에 눈이 떠졌네요. 머릿속에 할 일들이 떠올랐지만 침대에 누워 버티다가, '학교에 가서 빨리 끝내고 오자'라고 마음먹고 지금 교무실에 앉아있습니다. ^^;

  어제까지 못다 한 생기부 기록 점검 등을 두 시간 넘게 하니, 현타도 오고 놀고 싶어지네요. 그래서 음악을 틀어놓고 유튜브를 봤는데 며칠 전 봤던 <집사부일체>의 배상민 디자이너가 떠올랐습니다. 저에게 영감을 주었던 말이라서 다시 보고, 여기에 몇 자 기록해 볼게요.

  그런데 말입니다. 놀기(?) 시작한 지 20분도 안 됐는데 행정실에서 메시지가 왔네요. "10시부터 전기 설비 점검이 있어 정전이 되니, 출근하신 분은 컴퓨터의 전원을 꺼주세요~" 아휴~, 집에 가서 마저 써야겠네요. 아직 오전 9시 50인데요. ㅠ. ㅠ


이제 집입니다. 이어서 간단히 적어봅니다. 제가 <집사부일체>에서 인상 깊게 본 장면은 아래의 대화부터입니다.


이승기 : 디자이너는 계속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직업인데 어떤 방법이나 스킬이 있나요?

배상민 : 그게 제일 힘든 건데, 사람 피 말리는 거죠. … 직관이 뛰어난 사람들은 100% 메모합니다. 적어 놓고 기억해요. 그게 자기 뇌에다 씨앗을 심어놓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딴 생활을 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이 뇌가 무서운 게 계속 혼자서 생각하고 있어요. 씨앗만 뿌려놓으면 알아서 자랍니다.



  그렇게 뇌에 수많은 씨앗을 뿌려놓고 있다가, 어떤 고객이 무엇을 요구하면 그것과 연결되는 씨앗이 이미 있기 때문에, 그것이 아이디어로 싹을 띄우고 줄기로 자라나서 구체적인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비법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메모해라! 이것 자체는 식상한 비법이지만, 저는 배상민 씨의 화법에서 '수업 아이디어의 씨앗'을 얻었습니다. 쉬운 내용을 어렵게 전달하는 사람은 매력이 없지만, 심오한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면 어디서든 환영받는 '인싸'가 되지요.


  메모를 뇌에 씨앗을 심는 것으로 비유하기 전에 꺼냈던 이야기도 멋졌습니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비법에 관한 질문을 받고 "백발백중 명사수 이야기를 들려줄게요."라고 하자마자 김동현은 "벌써 재밌다."라고 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턱을 괴면서 경청할 준비를 합니다.



  "쏠 때마다 과녁 한가운데 10점만 맞힌다는 명사수의 비결이 뭘까요?"하면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말솜씨가 기가 막힙니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가서 명사수가 뭘 하나 봤더니, 아무것도 없는 빈 종이에 총을 빵빵빵 쏴서 구멍을 뚫어놓고는 펜을 들고 가서 구멍 주위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더랍니다. 그러니까 항상 10점 만점을 쏜 과녁이 탄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에 수많은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다가 어떤 요구에 맞춰서 과녁만 새로 그리면 백발백중 명사수가 된다는 의미였지요. 이 구멍이 바로 뇌에 심는 씨앗과 연결되어 더 멋진 이야기로 발전합니다. 화법을 디자인하는 능력도 탁월한 분이지요.



  제가 방학 첫날 <집사부일체>를 다시 보며 화법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사례를 얻었듯이, 다른 선생님들도 다음 학기에 아이들 앞에 풀어놓을 참신한 수업 디자인을 자신도 모르게 여기저기에서 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기 과목의 전문가인 선생님들은 똑같은 곳에 여행을 가도, 모두 다른 것을 보고 배웁니다. 같은 건물을 봐도 수학샘은 도형을 떠올리고, 역사샘은 세월의 흔적을 찾고, 영어샘은 영어로 적힌 안내문에 시선이 꽂히지요. 교사의 오감은 자동으로 수업을 향해 움직입니다.


  교사에게 방학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해 주는 분들도 많지만, 놀면서 월급 받는다고 상처 주는 분도 있습니다. 다른 전문가의 휴가도 비슷하겠지만, 교사가 방학 때 여기 저기서 '노는 것'도 교실이나 교과서가 아닌 다른 곳에 구멍을 뚫고 씨앗을 뿌리는 일임을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곳에 학교 일이나 문화생활을 기록하는 것도 저에게는 구멍을 뚫는 사격이고, 씨앗을 뿌리는 파종이네요. 2022년 더 멋진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아이들이 저절로 턱을 괴고 몰입하는 수업 디자인을 위해, 잠시 학교 밖에서 잘 놀다 오겠습니다. 저도 대부분 집에서 놀겠지만, 다른 선생님들도 후회 없이 놀고 오시길 바랄게요~






작가의 이전글 2022년의 시작, BTS에게 받은 위로와 응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