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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Feb 04. 2022

답이 없는 상태를 견뎌내는 힘이 필요하다

- 2022년 2월 교사 워크숍 생각(2)

  제가 담당하는 업무이기도 해서, 다른 학교의 '새학년준비 워크숍 운영 계획'을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는 보통 '고교 학점제와 학교 교육과정, 배움중심 수업, 학생 생활교육의 방향과 적용'에 관한 연수가 있습니다. 외부 강사를 초빙해서 강의를 듣고 선생님들이 학년, 교과, 부서별로 모여서 협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 전입해온 선생님들은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빨리 적응하고 싶은 마음에 '그래서 이 학교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무엇을 하면 되고, 하면 안 되나요?', 이런 것들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학교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학교 밖의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교육과정, 수업, 생활지도 등 학교의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서 간단하게 매뉴얼처럼 정리해서 전달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더더욱 그렇지요. 그래서 우치다 타츠루의 책 제목처럼 '완벽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고, '답이 없는 상태를 견뎌내는 힘'이 교사들에게 필요합니다.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조직에서도 위기 상황을 모두가 공유하는 소통과 집단지성으로 최선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평등한 관계가 요구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추구하는 미봉책만 되풀이하거나, 문제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후 잘못된 선택을 통해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치다 선생님도 이 책에서 이러한 문제를 '포퓰리즘과 음모사관'이라 칭하면서 경계하고 있습니다.



  현재 포퓰리즘이나 음모사관 같은 단순한 사고방식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까닭은 인간의 지성이 퇴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이 너무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잡한 현실 앞에서 스스로를 단순화함으로써 대응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 단순한 사고를 가능한 한 억제하고,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시비를 따지지 말고 우선 받아들인 다음, 되도록 많은 정보를 바탕화면에 나열해두고 함부로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학교에서 2월 워크숍은 '모든 학생의 진정한 배움과 성장'이라는 어려운 목표를 향해 출항하는 범선의 진수식과 같은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선은 배가 튼튼한지 다시 살피고, 선원들의 유대를 강화해서 신뢰를 쌓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것이 앞으로 항해에서 만나게 될 폭풍이나 예상 못 한 사고에 대비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인용했듯이, 학생 생활지도에서 쟁점이 되는 사안이나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수업과 평가의 방식 등 복잡한 문제일수록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 문제가 이렇게 복잡해진 과정을 살펴보고, 새로 오신 선생님들을 포함해서 다시 한번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외부 강사의 강의를 듣더라도, 우리 학교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강의를 들은 시간만큼 숙의하는 과정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이나 몇몇 부장교사의 명쾌한 지시나 설명 대신 명쾌한 답이 없는 복잡함을 공유하는 시간을 통해서, 오히려 선생님들은 한 배에 올라탄 것과 같은 운명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전입 교사들은 '아, 이 학교는 중요한 문제를 성급히 결정하지 않는구나. 복잡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나도 논의 과정에 참여해야겠구나.'라는 다짐을 자연스럽게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경험을 통해 모든 교사들은 아이들 앞에서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의해 본다면,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을 때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양쪽 주장이 모두 근거가 있지만 이쪽이 좀더 설득력이 있다'라고, 옳고 그름이 아닌 정도의 차이에 민감해질 수 있는 사람이, 그리고 그 정도의 차이에 기초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른에 대한 우치다 선생님의 정의를 읽으면서, 올해는 교사로서 더욱 겸허하게 배우고 겸손하게 동료와 학생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벌점제가 유행하던 시절에도 아이들의 행동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었고, 체벌이 있던 때에도 지각하는 아이는 계속 지각을 했고 수업 시간에 늘 자는 아이를 결국 깨우지 못했지요.


  이런 어려운 문제에 관한 뾰족한 묘수가 없는 대신에, 우리에게는 "왜 이 아이는 계속 지각을 할까요?", "왜 저 아이는 쉽게 포기할까요?"라는 고민을 나눌 동료가 있고, "좋은 수업을 만들기 위해 너희들이 선생님과 함께 노력할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어른스럽게 답해주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동료와 아이들을 먼저 어른으로 대하면 그들도 나를 어른으로 대접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근무하는 학교에서, 또 다른 학교에서 2월 워크숍에서 선생님들을 만나면 우치다 선생님의 말씀을 소개하고, 서로에게 '복잡함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가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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