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를 무서워(?) 하지만, 어떤 의무감을 가지고 <지금 우리 학교는>를 다 봤어요. 오늘(2월 8일) 현재, 10일 연속 넷플릭스 1위라고 하는데, 많은 외국인들이 'K학교'에 대해 편견을 가질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하네요. 영어를 잘 하시는 분들이 관련 유튜브 댓글에 '진짜 요즘 한국의 학교'에 대해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 가볍게 몇 자 적어봅니다.
드라마에서 효산고는 경기도 소재 사립학교이고 혁신학교이기도 합니다.^^; (유튜브의 현장 스케치 영상에서 우연히 발견했지요.) 이런 배경 설정에는 디테일을 보여 줬지만, 학교생활의 모습은 너무 상투적으로 묘사되어 아쉬웠습니다.
경기도의 모든 고등학교가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효산고의 대부분 모습은 10년, 20년 전에 제가 근무한 학교의 모습이더군요.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 원작 웹툰을 현재 시점으로 각색해서 드라마로 만들 때, 좀 더 고민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특히 학교폭력이나 왕따를 당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 사람들의 고정된 판단을 그대로 재현하는 '스테레오 타입' 그 자체여서 몰입하기 어려웠어요. 피해자의 상황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어디에나 있는 똑같이 불쌍한 아이들로 소모되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반면 남녀 주인공들의 연애 이야기는 과도해서, 10초씩 넘기며 봤답니다.
좀비를 상징적으로 활용해서 경쟁적이고 폭력적인 학교 교육의 문제점과 위기에 빠진 청소년을 구하지 않는 어른들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열심히 만든 것은 인정하고 싶지만, 특히 1화에는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 등교 지도 : 지금은 학생부 선생님들이 몽둥이, 아니 회초리를 들고 아침에 교문을 지키고 있지 않아요. 대신 교통안전 지도를 하면 웃으며 등교 맞이를 하고 있지요. 지각체크는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이나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하고요.
* 명찰 : 학교 밖에서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교복에 이름표를 박아 넣는 학교도 거의 없습니다. 대신 목에 거는 이름표는 있지요. 이 장면은 20세기말 감성입니다.ㅋㅋ
* 교무실 청소 : 저희 학교는 학생들이 교무실 청소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선생님들이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셔야죠.'라는 학생들의 충고를 듣지 않아도 되지요.^^; 창문을 넘어가서 밖에 매달려 닦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은 80년대 같았고요.
* 왕따, 옥상 : 아래처럼 교실에서 노골적으로 폭력을 쓰거나 괴롭히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학급의 다른 친구들이 모두 방관하며 웃고 있는데,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면 실제 좀비를 본 것보다 훨씬 더 충격을 받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의 옥상도 철저하게 문단속을 해서 학생들이 올라갈 수 없지요.
아침부터 기분 상하는 교문 지도, 하기 싫은 교무실 청소, 교실 속 노골적인 괴롭힘과 왕따 같은 것들은 거의 없어졌지만 2022년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은 여전히 괴롭습니다. 좀비처럼 영혼 없이 학교와 학원, 집을 왔다 갔다 하거나 밤거리를 떠돌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낮은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이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다시 좀비가 되어 희생됩니다. 욕심인 것은 알지만, 좀비가 되지 않더라도 지금 아이들을 억누르고 있는 진짜 공포를 제대로 다루고 있는 작품을 만나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