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텐트 밖은 유럽> 스페인편
배우들의 사생활이 궁금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까닭은 무엇일까? 최근 배우들이 등장하는 리얼 여행 예능이 많아져서 약간 지루한 감이 있었는데, <텐트 밖은 유럽> 스페인 편을 무심코 보다가 나도 눈물이 찔끔 나온 적이 있다.
밤늦게 캠핑장으로 가던 차 안에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배우 네 명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 하필이면 이문세의 '깊은 밤을 날아서'가 흘러나온 것이다. 즐겁게 열창하다가 잠시 쉬어가는 간주 부분에서 노래를 틀어준 권율이 갑자기 울컥했다.
가장 즐거워 보였던 권율은, '이 순간이 너무나 완벽하고 아름다워서' 눈물이 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기억날 것 같아요"라는 말에 다른 배우들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조진웅은 "아주 멋진 선곡이었어용"하면서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인생에서 아름다운 순간이 많이 있지만, 온몸이 찌릿하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 찾아올까? 권율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이 아름다움을 함께 누리는 옆에 있는 사람이 나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덤덤하게 깨닫는 순간이다. 이른 봄날, 만개한 벚꽃나무를 볼 때처럼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슬프고, 너무나 슬프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이런 역설적인 감동은 그들이 모두 배우였기 때문에 더욱 크게 느껴졌다. 스크린에서 감동을 연기하던 그들이, 거꾸로 연기를 내려놓으니까 진짜 감동이 찾아온 것이다. 가수나 개그맨도 여행 예능에 많이 출연하지만,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볼 기회는 많다. 가수는 콘서트에서 노래 중간에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개그맨은 다른 예능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애잔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배우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연기하는 모습이 아닌, 진짜 모습을 만나기 어렵고, 그래서 리얼 예능에 나오는 배우들의 모습을 PD도 시청자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들이 연기를 하지 않는 때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위안을 주고 재미도 주는 것이다.
교사인 나도 교실에서 연기자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에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기분이 안 좋아도 웃고, 때로는 화난 것을 연기한 후에 오스카상을 받을 만한 명장면이었다고 만족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배우 같은 나의 모습에는 뭉클함이 별로 없었다. 아이들과 나의 관계는 딱딱해서 진짜가 아닌 것 같고, 동료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어색할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이지만, 학교 밖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을 만나면 새롭고 즐겁다. 동네 마트에서 가르치는 아이와 꾀죄죄한 모습으로 마주치면 둘만의 비밀이 생기고, 학교 근처 카페에서 선생님들과 비밀 이야기를 나누면 우정이 쌓인다.
아주 가끔 여행을 함께 떠나면 권율이 느꼈던 감동만큼은 아니지만, 감격스러운 순간이 찾아 오기도 한다. 아이들과 좋은 경치를 보며 김밥을 나눠 먹고 음료수를 마시면서 나는 중년 아저씨와 아빠로서의 고충을 얘기하고, 아이들은 10대의 전쟁 같은 일상을 얘기하면 전우애가 생기기도 한다. 학교로 돌아가면, '이런 순간이 다시 찾아오기 어렵고 그래서 자주 기억날 것 같아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공적인 공간에서, 아니 친한 친구와 가족 들 앞에서도 가면을 쓰고 무언가 연기를 하면서 살아 하지만, 이렇게 잠깐의 나들이나 여행은 우리를 '진짜 우리'로 만들어준다. 서로의 진짜 모습을 보면서 친밀함을 느끼고, 나중에 돌아보면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을 선물처럼 나눠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이 좋은 것이다.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어서, 따분하고 지루한 여행 예능이 자꾸 땡긴다. 아주 짧은 순간 동안이지만, '깊은 밤을 날어서'의 노랫말처럼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날아서 궁전으로 갈 수도 있기에...
우리들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일들이
어쩌면 어린애들 놀이 같아
슬픈 동화 속에
구름 타고 멀리 날으는
작은 요정들의 슬픈 이야기처럼
그러나 우리들
날지도 못하고 울지만
사랑은 아름다운 꿈결처럼
고운 그대 손을 잡고
밤 하늘을 날아서
궁전으로 갈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