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티브이에서 봤던 팝콘처럼
뒷산에 아카시아꽃이 미친 듯이 튀겨지면
나는 책가방을 던져놓고 동네 아이들과 달려갔지
부잣집에 있던 전자레인지처럼 뜨겁게 두 뺨이 달아올랐지
산 중턱 바위 위에 아카시아꽃을 쌓아놓고
누가 뺏어 먹는 것도 아닌데
시합하듯 아카시아 꽁무니를 간지럽혔지
친구들의 이름 얼굴 목소리 한 조각 기억나지 않지만
깔깔 히히 쪽쪽 빨아 먹던 소리는 지금도
귓바퀴를 간지럽히네
차창 넘어 하얀 팝콘 나무가 넘실거리는 5월이면
그 달큰한 냄새에 입술이 달싹이고 침이 고이네
기름기 없어도 고소했던 아카시아의 향기와 맛이
넉넉하지 못했던 부모님이 주신
넉넉했던 시간의 선물이란 것을 이제야 알겠네
어버이날을 핑계로 전화를 걸어야지
국민학교 다닐 때 뛰어놀던 그 산이 어디쯤인지
딱히 궁금하지 않아도 물어봐야지
예전에 많이 따먹던 아카시아꽃들이
서울 변두리 어디쯤에서 아무도 모르게 튀겨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