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협력 역량'에 관한 공부를 위해 <관계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적정 거리 심리학>을 읽기 시작했다. <개인주의를 권하다>를 읽고 '건강한 개인주의를 존중하기'의 가치를 알았다면, 이번에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거리두기'가 모든 인간관계에서 갈등의 예방과 깊이 있는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신선하게 느끼고 있다.
관계 맺기의 심리학에 대한 책들이 많이 있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의 사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점이 좋았다. 조직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기술적인 대화법이 아닌 것이다. 상대방을 겉모습이나 단순한 행동을 가지고 판단하면 '나와 그것'의 관계로 전락하지만, 그 사람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내면을 보려고 노력하면 '나와 너'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한다.
'나와 너'의 만남이라는 진정한 관계 맺기를 위해서 이 책은 무엇보다 '판단 중지'를 강조한다. 예전에 비폭력 대화 연수를 들으면서 비슷한 내용을 배운 적이 있지만, 이 책은 철학적으로 또 문학적으로 판단 중지, 즉 자신의 과거 경험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타인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차근차근 서술한다.
사람은 누구나 그 속이 복잡하다. 오랜 시간 다른 시간을 살아온 나에게 너는 단순히 나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신비한 존재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존재라서 너는 늘 오묘한 세계다. 마치 눈앞에 광대하게 펼쳐지는 대자연처럼 겸허하게 다가가야 한다. 우리의 과거 경험으로 쉽게 판단하는 순간 그 끝을 알 수 없는 신비는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 '가까운 사이에서 시작하는 마음의 거리 두기 ' 중에서
이 구절을 읽으니, 학교에서 수업공개 업무를 하며 선생님들께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던 경험이 떠올랐다. 자율 장학을 위한 수업공개 주간이 끝나고 수업참관록을 제출하지 않는 선생님들께 매해 비슷한 내용으로 메시지를 보냈었다. '선생님들, 많이 바쁘시지요? 수업참관록을 내일까지 간단하게라도 제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독촉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업참관록을 보내지 않은 이유를 단정해서 편하게 메시지를 보냈던 것 같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받은 분들은 모두 졸지에 '조금 바쁘다는 이유로 간단하게라도 수업 참관록을 제때 제출하지 않은 교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저마다 사정이 있고 수업 참관에 대한 생각이 다른 각각의 '너'인데, 모두 같은 이유를 가진 '그것'으로 쉽게 판단했던 것이다. 이런 겸허하지 않은 자세 때문에, 계속 참관록을 제출하지 않은 분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책은 '너라는 존재 안에 감춰진 신비를 겸허히 인정하지 못한다면, 누구든지 심지어는 가장 가깝게 느끼는 부모와 자녀 사이라도 폭력과 갈등의 대화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는 이유에 관해서도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에게 자꾸 화가 치밀어 오르고 이상하게도 못된 사람처럼 보이는 이유가 있다. 그들을 향해서는 남들보다 더 큰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존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 그런 욕구가 좌절되면 자동 반사적으로 상대방을 향해 분풀이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상대방 때문이라고 판단해 퍼붓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과거 경험 때문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 경험과 지금 여기의 경험 사이에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 '가까운 사이에서 시작하는 마음의 거리 두기 ' 중에서
그랬던 것이다. 학교 업무를 하면서, 또 수업을 하면서 나 역시 모두에게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런 욕구를 이루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한다고 자부하면서 겸허함을 잃었고, 나를 무시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모두 같은 부류로 여기면서 한 명 한 명을 신비함을 가진 존재로 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직장에서 업무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의식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잠시 괄호 속에 집어넣는 '판단 중지 능력'이 소통과 협력 역량을 기르는 데 매우 중요함을 새삼 느꼈다. '지금 여기'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제대로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작하는 신중함을 잃지 않기 위해 이 책의 내용을 계속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