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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Aug 05. 2023

어둠의 시대, '새는 빛'을 찾아서

- 후배 교사에게 보내는 시 선물, 한용운의 <사랑의 끝판>

 

 S쌤! 내가 올해 학교에 있었다면 예전처럼 같은 학교에서 온갖 수다를 다 떨었을 텐데,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네. 지난 6월에 만났을 때 "담임반 아이들 모두 예뻐요" 하고 웃었지만, 홀쭉해진 두 볼이 계속 내 마음에 걸려 있네. 다시 돌아온 낯익은 학교에서 낯선 선생님들께 다가가느라 진땀도 꽤 흘렸을 같아. 못다 한 이야기는 소주잔 기울이며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시 한 편으로 나의 안부를 전하며 S쌤의 안부도 묻고 싶네.


사랑의 끝판    - 한용운


네 네 가요 지금 곧 가요

에그 등불을 켜려다가 초를 거꾸로 꽂았습니다그려 저를 어쩌나 저 사람들이 흉보겠네

님이여 나는 이렇게 바쁩니다 님은 나를 게으르다고 꾸짖습니다 에그 저것좀 보아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하시네

내가 님의 꾸지람을 듣기로 무엇이 싫겠습니까 다만 님의 거문고 줄이 완급을 잃을까 저어합니다


님이여 하늘도 없는 바다를 거쳐서 느릅나무 그늘을 지워버리는 것은 달빛이 아니라 새는 빛입니다

홰를 탄 닭은 날개를 움직입니다

마구에 매인 말은 굽을 칩니다

네 네 가요 이제 곧 가요


  시집 <님의 침묵>에 실려 있는 마지막 시인데, S쌤도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초를 거꾸로 꽂아 등불을 켜지 못한 적도 있겠지. 그렇다고 내가 '학교에서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하고 꾸짖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지난 학기에 마음의 거문고 줄 조금 늘어지거나 팽팽해졌다면 방학 동안 좋은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한 빛실컷 쬐길 바랄게.

   하늘이 안 보이는 바다처럼 세상이 캄캄하고 어지러울수록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 '새는 빛'을 참고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 교사가 아닐까. 혐오와 폭력의 시대에 우리도 안전하지 않지만, 어둠의 틈을 뚫고 나오는 여린 빛을 향해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 우리의 희망이 되겠지. 지독한 무더위도 이제 곧 갈 거고 가을, 겨울도 지나가면 내년에는 다시 학교에서 만나자고. 내가 곧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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