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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Oct 24. 2023

「선생님, 항우울제 대신 시를 처방해 주세요」책 읽기

-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을 토닥여 주는 '시 치료'


  연구년 보고서 작성에 참고할 책을 찾다가 「선생님, 항우울제 대신 시를 처방해 주세요」를 읽고 있다. 이 책의 '선생님'은 교사가 아니라 정신과 전문의인데, 교사나 다른 직장인들이 읽어도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이 있고 치유가 되는 시가 있다. 저자의 말처럼 '시 치료'라 부를 만 하다.



  나는 '그냥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어요'를 가장 먼저 읽었다. 최근에는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지만, 나중에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주제였다. 그리고 '싫은 이유가 정말 많은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할 때 필요한 처방전도 미리 받아두고 싶었다.

  한 인간이 지독히도 싫어지는 현상을 '인간 알레르기'라고 부르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피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알레르기 반응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작은 방법을 시도해 보라고 권한다.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은 당황스럽게도 '귀여움'이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라는 말도 있다면서, 싫은 감정이 너무 활성화되어 있는 걸 중화시키기 위해서 귀여움에 매료되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예쁜 것, 멋진 것, 웃음이 "풋" 나오게 하는 것도 좋다. 이런 무해함에 반응한다는 것은 아직 내 안에 '어린이다움'이 남아 있다는 뜻이고, 이러한 동심(童心)은 우리의 마음 전체가 '얼어 버리는 일(冬心)'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귀여운 책을 만든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도 참 깜찍한 분이겠지…


  나는 이 부분을 읽고 학교에서 했던 '교직원 마니또'가 떠올랐다. 모든 교직원이 한 명씩 비밀 친구를 뽑아서 1주일에 한 번씩 3주간 몰래 도와주거나 선물을 놓고 가는 이벤트였다.  4~5월 한 적도 있지만, 모두가 지치고 바쁜 12월에 했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다.

  처음에는 하기 싫어서 투덜대는 분 있었지만, 아침에 출근하면 마니또가 놓고 간 초콜릿과 커피, 예쁜 엽서에 적힌 편지를 보고 다들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12월 24일 오후에 모여 한 명씩 마니또 발표를 하면서 '만 원의 행복'이 담긴 선물을 주고받을 때는 감동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조건 없이 호의를 베푸는 순수한 마음이 한 편의 시처럼 차가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데워 주었다.

(그래서 여기에도 '교직원 마니또'의 재미와 감동을 소개하는 글을 여러 번 적었다. )


  그럼 어떤 사람이 진짜 싫을 때, 항우울제 대신 처방해 주는 시는 무엇일까? 바로  이문재 시인의 <봄날>이다. 배달원의 계란탕처럼 순하고 어린이처럼 귀여운 모습이 몇 개의 알약보다 힘이 더 셀 것 같다.


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 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국어 시간에 시집을 읽고 친구나 가족에게 시를 골라 선물하는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치유법과 추천 시를 참고해서 아이들과 '시로 치유하기'를 하고 싶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학교나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읽고 소감을 나누고, 가장 마음에 와닿은 시를 낭송하며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도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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