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는 대로 이루어진다>와 슬로우 어답터 되기

by 글쓰는 민수샘

ChatGPT 활용 수업을 위한 교사 단톡방에 연수 안내 글이 올라왔는데, 주최가 '한국AI작가협회'였다. 호기심이 생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훑어보니 'AI 활용전문가 양성 과정'이 있어서 신기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교육자료와 예술작품 제작, 문해력 향상 교육, 칼럼 및 기사 작성도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90년대 초반 대학생 때부터 이동형 워드프로세서를 들고 다니며 쓴 글을 바로 출력했고, 디지털 기기와 교육용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많아 나름 얼리 아답터로 살아왔지만 AI를 활용한 글쓰기는 왠지 '슬로우 어답터'가 되고 싶다.


2차 지필고사 기간이라 좀 여유가 있어서, 예전에 사놓고 제대로 못 읽은 글쓰기를 책을 한 권씩 꺼내 도장 깨기를 하고 있다. 첫 번째 상대는 한명석 작가의 <나는 쓰는 대로 이루어진다>이다.


image.png?type=w1


image.png?type=w1


목차에서 가장 매력적인 '좋은 글은 쓰고 싶으면 재미있게 살아라'를 먼저 읽었다. 동물들이 주변 환경을 어떻게 알아차리나 연구하던 생물학자에게 비롯된 구성주의를 소개한 부분이 재미있었다. 동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의 수만큼 대상물을 구분하듯, 인간도 무언가를 알고 있고 행하고 있다면 글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한다.


자기 안에 갇혀 맴도는 글은 옹알이 같아서 갑갑하기 때문에 외부에 열어 있는 사람의 활달한 에너지가 드러나는 글을 좋아한다는 말에도 200% 공감했다. 내가 작년에 출간한 두 권의 책도 진지한 사색과 연구보다는, 교무실 밖에서 다른 선생님들을 만나 소통했던 기록이고 학교를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올해 안에 수업에 관한 세 번째 책을 출간하겠다던 새해의 결심은 이미 로켓 배송으로 달나라에 간 것 같지만, 아래 구절을 밑줄 치고 읽으면서 다시 의욕이 생겼다.


삶에 대한 탐구심부터 회복해야겠다. 늘 배우고 익혀서 나날이 성장하는 자의 자부심으로 무장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 한 관심의 창을 활짝 열어야겠다. …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쓴 사람의 기운을 느낀다. 건조한 자료 뒤에 숨어 당위만을 되풀이하고 있는지, 동참할 여지도 주지 않은 채 목청 높여 선언하기에 바쁜지, 마음을 다해 자기가 발견한 것을 나눠 주고 싶어 하는지 다 느낄 수 있다. 문체나 행간에 숨어 있는 그 기운에 먼저 접속되지 않으면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윌리엄 진서도 "궁극적으로 글 쓰는 이가 팔아야 하는 것은 글의 주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했을 것이다.


책과 자료를 펼쳐놓고 최신형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ChatGPT를 활용한 글쓰기 연수를 받고 작가 양성 기관에 등록하더라도 '송곳처럼 한 자리에 꽂힌 채' 글을 쓴다면 독자에게 전해줄 에너지가 제대로 충전되지 않을 것 같다.


돌아보니까 수업에 관한 책을 쓰려고 준비하다가 멈춘 시기와 고3 수업에 관한 고민과 도전을 멈춘 시기가 맞아떨어진다. 5월 초 무렵이다. 7월이 되고 다시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2학기 때 고3 아이들과 함께 할 글쓰기 수행평가의 주제와 방식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냥 수업이 아니라 '글쓰기 수업'에 관한 책을 내보자는 생각도 강해졌다. AI에게 떠먹여 줄 자료를 찾는 대신에,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의 숫자를 늘려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고, 화려하진 않더라도 나의 긍정적 에너지가 읽는 이에게까지 찌르르 전해지는 그런 글을 쓸 수 있게 되면 참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생기부 기록, 'ChatGPT'보다 'Chat'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