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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Nov 15. 2024

수능날이 아닌 어느 멋진 가을날에

어느 해 수능 감옥에서 풀려나

노을을 보며 걸어갈 때

자줏빛 하늘처럼 취해 욕지거리라도 뱉고 싶었을 때

침묵하던 핸드폰이 떨리며 너의 소식을 전했지


동문회에 안 나가는데 단톡방에선 왜 안 나갔는지

그 생각만으로 멍해졌어

언젠간 알았겠지만 왜 하필 수능날 저녁이었는지

그날 만난 가장 어려운 문제였어

우리가 이십 대였을 때 너도 교사가 되었다면

너의 부고를 알리는 숫자 1도 없었을까

너도 나처럼 감독관 명찰을 반납하며 소주가 땡겼을까


여군이 되고 싶었다며 군대 얘기에 빠삭하던 너

남자 후배보다 더 머슴아 같던 네가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몇 년 만에 나타나

임용시험 공부를 같이하고 싶다고 졸랐을 때

많이 늦었다고 거절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만 들었어


네가 태어난 바닷가에서 너를 보내고 오던 길

동문회 좀 나오라는 잔소리를 흘려보내며

너의 목소리를 기억하려 애썼지

대책없이 해맑던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어


수능날 하늘엔 비행기도 날지 않는데

우리를 내려다보며 주먹질이라도 멋지게 해줘

수능날이 아니라 어느 멋진 가을날에

씩씩했던 너를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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