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 D+ 6일, 오늘은 다행히 조금 더 잠을 잘 수 있었다. 칸트도 아닌데 나흘 연속 새벽 4시 언저리에 깨다가, 무려 4시 50분에 깬 것이다. 아, 아주 조금 개운했다... 이제는 루틴이 생겨서, 언론사 뉴스를 훑고 인스타와 스레드에 올라온 글을 읽는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영상 몇 개를 보고 6시가 넘으면 출근 준비를 한다. (그래서 항상 1등으로 출근한다)
출근해도 틈이 나면 뉴스 속보와 새로 올라온 영상을 챙겨 본다. 오늘 아침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과몰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근에 올린 글도 다 시국 관련인데,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수능 끝난 고3 비담임이라도 심했다.)
그래서 블로그나 SNS에서 다른 선생님들이 12.3 사태 이후에 올린 글을 찾아봤다. 역시 계엄과 탄핵 관련 글의 비중은 내가 제일 잘나갔다. '왜 그럴까? 좀 자제해야 하지 않나?'라는 메타 인지가 발동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나는 다시 '탄핵 집회 때 이런 노래 어때요? 랩 가사를 써봤어요'란 글을 발행하고 뿌듯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오늘은 이걸로 끝내자. 여행 유튜브를 보고 책이나 읽자.' 마음먹었는데, 이 밤에 다시 이 글을 쓰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메타에 메타 인지를 다시 발동해 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비상계엄이 국회 표결로 해제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계엄군 포고문이 그대로 집행되었다면, 그것에 맞서 시민들이 맨몸으로 무장한 계엄군을 향해 행진했다면... 나와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잃을 수도 있었다. 가족을, 친구를, 선배와 후배를, 그리고 어쩌면 우리 아이들을! (전투경찰과 백골단에게 쫓기고 끌려가서 밟힌 기억이 선명한데, 그자들이 계엄군에게 계속 폭력을 강요했다면 우리 청년들의 현재와 미래가 침몰할 수 었었다)
이런 생각에 다시 마음이 비장해져서, 국회 앞 집회의 시민 자유 발언대 영상 몇 개를 봤다. (그런데 말입니다) 10대, 20대 아이들의 발언이 너무나 유쾌, 상쾌, 통쾌한 것이 아닌가? 지난주 수요일 밤에 광화문에 다녀온 여파인지 몸이 좋지 않아서, 토요일 집회에는 못 갔는데 영상으로나마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비장함이 쑥스러워졌다. 그리고 비장함을 날려버리는 핵주먹 하나를 얻어맞았다.
"저는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으로서 저희 부모님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엄마, 아빠! 40년 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이제는 우리가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줄게!"
이런 말을 웃는 얼굴로 상큼하게 외치는 모습을 보고 코 끝이 찡하면서도, 마음속에 가라앉은 돌덩이가 쓸려나간 기분이 들었다. 응원봉을 흔들며,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방방 뛰는 청년들은 진정으로 즐기면서 싸우고 있었다. 나쁜 놈의 입장에서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덤비는 사람보다, 실실 웃으면서 '너! 이리 와, 혼나볼래. 가만 안 두겠어!' 하며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이 백배 천배 무서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청년보다 조금 위 세대인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도 방송에서 이렇게 말하며 울먹였다.
"저는 1989년생이라서 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닌데, 이번에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정말 빚을 많이 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당연하게 누려왔던 자유가 당연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픈 경험을 가지고 계신 어른들께서 과거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다시 거리로 나와주셔서 함께해 주시는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국회 밖에서 계엄군을 맨몸으로 막아낸 민주화운동 세대에 대한 감사였다. 계엄 트라우마를 극복해 낸 시민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비상계엄을 준비하고 실행한 자들 때문에, 20·30세대와 40대 이상 세대가 광장에서 대통합을 이루었다. 젊은 세대는 즐거움에 비장함을 한 스푼 얹어 저마다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선배 세대는 비장함에 즐거움이라는 날개를 달고 좀 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이제 새로운 희망이 선명하게 보인다. 우리의 청년들은 아는 것이다. 계엄군의 총구를 돌려세우고, 연단에 올라 구호를 외칠 수 있는 용기를 준 이들이 누구인지를. 아이돌 응원봉은 없지만, 다X소 응원봉이라도 들고 여의도로 갈 것이다. 너희들, 딱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