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만난 계엄 5 (연작시)
녹두장군 전봉준에게 일본인 취조관이 물었다
혁명이 성공했다면 무엇을 하고 싶었냐고
전봉준 장군은 쓸쓸한 얼굴로 답했다
고향에 내려가 다시 농사를 짓고 싶었다
암살 임무를 받고 떠나는 독립군 안옥윤에게
경성에 가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커피라는 것도 마셔보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고.
뭐, 일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5.18 광주에서 계엄군에게 사살되기 전날 밤
시민군에 참가한 젊은 야학 교사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2024년 겨울 광장에서 시민들은 깃발에 이렇게 썼다
쿼카를 보존하고 싶다
계속 집에 누워있고 싶다
웬만하면 뒤로 미루고 싶다
혈당 스파이크를 방지하고 싶다
강아지 발 냄새를 계속 연구하고 싶다
동학 농민군도 항일 독립군도 광주의 시민군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살고 싶었다
우리의 일상은 그들의 꿈이었다
군홧발에 다시는 부서질 수 없는 꿈
- 탄핵 집회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구경하다가 영화 <암살>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전지현이 연기한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은 경성에서 커피란 것을 마시고 싶었고 연애도 하고 싶었다. 허구이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독립군 청년들에게는 진실이었을 것이다. 따뜻한 밥 한 그릇, 커피 한 잔, 사랑과 평화... 저마다 깃발이 되어 행진하는 청년들을 보며 전봉준 장군을, 독립군과 시민군을 떠올리는 나는 왜 이리 유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