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석의 시 <국수>를 오마주함
이번 설날에는 떡국 말고 국수를 먹었으면
하나하나 떨어져 있는 떡 말고
듬성듬성 흩어진 고기와 달걀 고명 말고
넉넉한 그릇에 무심하게 툭툭 사리를 담고
수수하고 심심한 국물에
저마다 양껏 김치를 올려
뭉친 실타래가 풀리듯
휘휘 저어 후루룩 후루룩
국수를 말아 먹었으면
옛날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랬듯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땅에
다시 마을마다 집마다 곡소리가 터지지 않기를
왕이 외적을 들이고 군인이 동포를 죽이는
그 옛날로 돌아가지 말자고 토닥이며
둘러앉아 국수 한 그릇씩 살뜰히 비우기를
- 내일은 2025년을 다시 시작하는 설날. 창밖의 함박눈을 보고 있으니까 백석의 <국수>가 떠올라서 시를 써봤다.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그리워했던 1941년 백석 시인의 심정이 짐작되어 슬펐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 만주를 떠돌던 백석은 고향의 모습 속에서 늠름하고 듬직한 우리 민족의 기상도 발견했다. 흰 국수처럼 부드럽고 수수하지만, 어려움을 이겨내는 강인한 공동체 정신도 지닌 우리 한민족! 뜨끈한 국물 속에서 국수 가락이 풀리듯, 지금의 정치적 위기도 술술 풀려가길 조상님께라도 빌어 본다.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도 평온하고 따뜻하고 배부른 설날을 보내시길...)
출처 : 권영동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