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가고시마 '어쩌다 도보' 여행
가고시마 여행 이틀째인 2월 10일,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렸다. 계획했던 관광지들을 포기해야 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호텔에 짐을 맡겨 놓고, 비를 좋아하는 작은 아이와 바다를 좋아하는 큰 아이를 따라 항구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해변 공원에 도착하자 작은 아이는 비를 맞으며 가볍게 뛰었고, 큰 아이는 바닷속 물고기를 염탐했다. 나는 벤치에 앉아 구름 사이로 보이는 사쿠라지마를 감상했다. 한적한 공원에서 비를 피하며, 익룡이 날고 티라노사우루스가 포효할 것 같은 활화산의 신비한 정적을 누렸다. 바람 따라, 비 따라 흘러온 지금이 행운처럼 느껴졌다.
두 번째 숙소로 걸어가려고 호텔을 나서자 비가 그쳤다. (어쩌면 오늘도 꾸역꾸역 해피엔딩?) 구글맵을 보며 이 길이 맞네, 저 길이 맞네 아웅다웅하다가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는데, 이 모습이 오랫동안 그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던 작은 걸음이, 이제는 저만치 앞서서 길을 만든다. 아이들의 등 뒤로 쏟아지는 맑은 햇빛과, 기분 좋게 흔들리는 노란 러닝화 가방 두 개. 어쩌면 이번 여행은 아이들의 뒤를 따라 걷는 연습을 하러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어린 날의 아이들을 가장 젊은 내가 눈에 담는 이 순간, 나는 조금 더 천천히 걷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