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움의공동체 수업디자인 이야기 (3)
10년쯤 전에 학교의 수업과 동아리, 교사들의 연수와 연구회에서 '논술과 토론'이 화두였습니다. 일방적 전달 위주의 수업에서 벗어나려는 교사들의 노력도 있었고, 대입에서 논술과 면접(구술시험)의 비중이 높았던 영향도 있었습니다. 저도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의 영재반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쳤고, 학생들의 토론동아리를 지도하기도 했지요. 수업에서는 글을 읽고 찬성측, 반대측, 배심원으로 나눠서 찬반토론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논술 수업도 힘들었지만, 특히 토론 수업이 저에게는 정말 부담스러웠습니다. 진행하는 저부터 재미와 감동이 없었습니다. 몇몇 반짝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토론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정말 성장하고 있을까, 자신이 발언한 것을 실천할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유행하던 '경쟁식 토론 방식'이 저와는 맞지 았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진행을 못 했던 탓도 컸겠지만 타이머의 째각째각 소리가 신경을 날카롭게 했고, 서로의 논리적 허점을 공격하며 비웃는 아이들의 표정이 송곳처럼 가슴에 박혔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비경쟁식 토론'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아이들에게 '존재론적 안전감'을 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을 해도 안전하고 위협당하지 않을 거라는 편안함이 배움으로 향하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까요?
배움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의 상태를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정동(情動,affect)'이론을 통해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엄기호 선생님의 대학원 강의에서 접한 정동은 쉬운 말로 '정서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어떤 대상에 감응하게 되면서 생기는 몸 안쪽으로부터의 변화가 정동인데 이성과 감성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개념입니다. 정동이 생겨나야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몰입하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배움의 환경이 안전함, 편안함을 주는 교실, 대상과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시간,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생과 학생간의 평등한 관계입니다. 경쟁식 찬반 토론, 시간 제약, 교실 속의 명확한 역할 구분, 교사가 감시자의 위치에서 체크리스트를 통해 평가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정동(감응)이 생겨날 틈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 문제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해라, 책을 읽고 온전한 문장으로 질문을 만들어라, 어느 측이 설득력이 있었는지 평가해라"는 요구를 아이들에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토론' 자체가 수업 주제라면 필요하겠지만, 일상적인 수업과 독서토론에서는 오히려 아이들의 머리를 터지게 만들고 가슴을 차갑게 식게할 수도 있습니다.
글을 읽고, 대상을 관찰하고, 문제에 접하는 시간을 충분히 주면서 '어디가 인상적이었는지, 울림이 있었거나 없었는지,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았는지'를 모둠에서 먼저 편하게 대화하며 서로 공감하고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교실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