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독> 4화...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가?

- 능력주의와 민주주의

by 글쓰는 민수샘

드라마 <블랙독> 4화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는 장면이 있었어요. 마음을 지나쳐 몸까지 역겨워서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행정실장을 대신해서 3학년 부장이 기간제 계약 때문에 수업 중에 모든 교실로 방송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기간제 선생님들께서는 가급적 빨리 행정실로 와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아마 이 장면을 본 분들 중에 비슷한 감정을 느낀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아무리 드라마에서 악역을 하는 고3 부장 교사이지만, 끔찍한 장면이었어요. 게다가 행정실에서 수업 중에 다시 '기간제 선생님들께'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만 화면이 학생들에게 노출되고, 한 아이가 "샘! 샘 기간제에요?"라고 물어보는 사태까지 생기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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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교감선생님이 수업 중에 방송으로, "선생님들중에 승진을 하지 않을 분들은 지금 교감실로 와주세요"라거나 "교원 성과급 등급에 이의가 있는 분들은 바로 교장실로 와주세요"라고 했다면 기분이 얼마나 참담했을까요? 아이들이 "샘, 교장 포기자에요?" 혹은 "선생님, 성과급 B등급이에요?" 물어본다면 당장 학교를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 들지 않을까요?

<블랙독>에서도 '기간제 교사'를 방송으로 찾는 걸 보고, '미친 거 아냐'라는 선생님도 있었고, 교감샘도 밖으로 불러서 질책합니다. 그런데 3학년 부장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같은 교무실에 일한다고 해도 기간제와 우리는 엄연히 다른 존재아닙니까?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월급을 받는다고 해도 우리들은 여기서 평생을 함께 할 식구고, 그 사람들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잖아요?" 교감샘이 가고나서는 혼잣말로 "누가 시험에 붙지 말라고 그랬나! 억울하면 붙으면 될 것 아니야!"라고 큰소리를 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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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을 비판할 의도로 그랬겠지만, 이 장면을 보고 다시 상처를 받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부장교사에게 기간제 담임교사는 언제라도 다른 사람으로 대체 가능한 '인격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사용가치만 있는 존재'로 보일 것 같습니다. 아무리 허구라지만, 작가의 설정이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숫자로 나타나는 '명문대 진학 결과'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강남의 사립고등학교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서늘한 생각이 뒤를 이었습니다. 올바른 가치를 교육하는 학교가 아니라, 다른 학교나 학원과 경쟁하는 '회사 같은 시스템과 문화'가 이런 최소한의 공감 능력도 없는 3학년부장 같은 괴물을 만든 것 같습니다.

역시 문제는 메리토크라시, 즉 능력주의의 포로가 되어버린 정교사가 기간제 교사의 인격마저 무시하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데모크라시,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인 '인간의 존엄성'마저 가볍게 무시해버려는 무서운 능력주의의 주문에 걸려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요? "억울하면 출세해라~"라는 말을 최소한 교사들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모든 교사는 꼴찌부터 일등까지 모든 아이들의 교사이고,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어른이니까요.

답답한 마음에 전에 읽었던 논문을 다시 꺼내 보았어요. <메리토크라시에서 데모크라시로 - 마이클 영의 논의를 중심으로>라는 경희대 성열관 교수님의 글인데, 능력주의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목소리라고 생각해요. 과거 봉건제도의 계급 상속을 부수기 위해 등장한 능력주의가, 이제는 자신의 능력을 자녀에게 상속하는 부조리를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능력주의 사회는 근대시민혁명이 그랬듯이, 또 한 번의 민주주의 혁명에 의해 전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아래에 일부분을 인용해봅니다.


국가경쟁력 또는 사회효율성 담론은 ‘인간의 존엄성’ 또는 평등이 사회 비판의 준거가 되지 못하도록 막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물론 국가발전 이념은 세습이라는 봉건적 질서를 새로운 근대국가의 질서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효과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후기산업사회로 돌입한 오늘날의 사회에서조차 여전히 국가경쟁력 담론은 인간의 존엄성 담론을 압도하고 있으며, 다양한 인정투쟁조차 국가의 효율적 운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에도 메리토크라시가 국가발전 이념과 결부될 때, 그 논리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보다 엘리트 중심 사회체제를 정당화시키는 데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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