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평가,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 교사의 12월 이야기, 마지막...

by 글쓰는 민수샘

2학기 성적 산출과 축제도 끝나고 방학만을 기다리는 12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앉은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이 나눠준 생기부를 읽어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고3이라 두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되어 종이에서 연기가 날 것 같은 아이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한 아이가 저를 보며 슬픈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 "샘 때문에 이번 생은 망했어요..."

농담삼아 한 말인걸 알지만, 돌덩이가 들어있는 눈뭉치에 맞은 듯 가슴이 찌릿했습니다.


1차 지필시험에 100점이 많아서 2차 시험을 어렵게 낼 수밖에 없었는데

제가 출제한 부분에서 두 문제를 틀려서 아깝게 1등급을 받지 못한 아이였지요.

220명 중에 9명만이 1등급을 받는데, 한 문제로 등급이 바뀌는 걸 알기에

뭐라고 위로도 못 하고 저도 그 아이처럼 슬픈 눈망울이 되었습니다.

1년 동안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고

별난 국어샘을 만나서 난생 처음 자기 이야기로 랩가사로 써보고

문학 작품으로 한국근현대사를 돌아보며 가슴 아파했고

덴마크처럼 행복해질 수 있는 정책을 멋지게 써서 국민청원 글에도 인용된 아이인데

'이생망' 소리를 들으니 많이 속상했어요.


그래도 믿고 의지할 것은 아이들이 만들어낼 미래입니다.

생기부에 찍힌 왜소한 숫자 하나가

수업을 통해 깊어진 생각과 넓어진 마음을 조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사와 학생을, 부모와 학생을, 그리고 학생과 학생에게 서로 상처를 주게 만들어 놓고

1등급을 대물림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미국으로 유학도 다녀오신 그 잘난 분들이 밉습니다.

고등학교 교사들에게 1부터 9까지 등급을 매겨라, 생기부에 이것저것을 적어라 또 적지 마라... 아주 하인 부리듯 합니다.

언론에서는 가장 만만한 집단이 교사라고 여기는지, 소수의 부정적 사례를 부풀려 생기부 기록을 불신하니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얻기 힘듭니다.

대학에서도 자신들이 필요한 학생들을 다양한 평가 방식을 통해 뽑아가야 하는데, 무슨 완성된 작품처럼 학생들을 줄세워 보내주기를 바랍니다. 수능 시험장 설치와 감독까지 다 교사들이 하는데도요.


1인당 국민소득과 행복지수가 우리보다 높은 나라들은 대부분 절대평가입니다. OEDC 37개국 중에 우리나라 행복지수가 꼴찌인데, 고교 성적과 대입 시험에서 상대평가는 가장 철저하게 하는 나라일 것입니다.

학생이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평가 때문에 행복, 자존감, 희망 이런 것들이 다 부질없어 보이고, 교사가 정말 노력하지 않으면 내면에 대한 탐색,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 공동체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아이들과 공유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온 김에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를 크게 틀어놓고 들었어요. 머릿속에, 가슴속에 계속 이런 메시지가 웅웅거립니다. "상대평가,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는가?"


* 아이들이 쓴 글로 올린 국민청원이 현재 787명입니다. 1000명이 넘도록 다시 한 번 주소를 올릴게요. 첫 번째, 요구가 '상대평가를 없애라'입니다. ^^


첫째, 고등학교에서 성적 상대평가를 없애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교과과목 성적 평가가 상대평가로 진행됩니다.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나열해 4%는 1등급, 7%는 2등급, 12%는 3등급으로 분류합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단 1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기도 하며 자연스레 친구와의 경쟁의식이 생깁니다. 실제로 시험을 본 날 다른 친구들이 시험을 잘 보지 못했으면 같이 슬퍼해주는 것이 아니라 안심하는 괴이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교육제도일까요? 협력과 협동을 중시하는 교육을 지향하면서 성적 평가는 상대평가라니, 모순입니다. 따라서 경쟁보다 협력을 중요시하는 덴마크의 교육방식을 참고해서 성취도로만 평가하는 것이 이상적인 교육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평소 수업시간에도 강의식 수업이 아닌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토의하는 형식의 수업을 진행한다면 경쟁보다 협력을 중요시하는 대한민국 교육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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