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isdom Shine Dec 16. 2022

12. 캣타워(3)

다음 날 아침. 구슬이는 캣타워 위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고양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재확인시켜주듯이, 캣타워에 대한 두려움은 일찌감치 벗어버린 듯했다. 나는 원래 구슬이가 캣타워를 정복하는 과정을 하나씩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려움이 있을 때면 조금씩 도와주며 캣타워 정복 조력자로 활동하길 희망했다. 하지만 그 꿈은 허무하게 하루 만에 깨지고 말았던 것이다. 아니 몇 시간 만에.

하지만 역시 넥카라 때문에 위험천만한 광경이 몇 번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위아래로 움직이는 공간이 좁다 보니, 넥카라를 착용한 채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썩 편해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구슬이가 캣타워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창문 해먹을 하나 주문했다. 캣타워가 넓어지는 효과도 있고, 이동도 편해지며, 해먹 그 자체로 구슬이가 쉴 수 있는 공간이 하나 더 늘어나는 장점이 있어 보였다.

창문 해먹 역시 구슬이는 곧잘 적응했다. 해먹에 앉아 창밖을 보는 풍경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위아래로 이동할 때 발판으로 꽤나 잘 사용해가는 모습은 뿌듯했다. 그리고 구슬이 꼬리에 새로운 털이 나기 시작하면서 구슬이의 넥카라를 벗기기로 결정했다. 링웜의 전염성은 이제 없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내용은 아니지만, 보통 새로운 털이 나기 시작하면 링웜의 전염성이 없다고 판단한다는 몇 개의 글을 읽고 과감히 결정했다. 눈을 많이 비비면 문제가 될 것 같았기에, 그 부분은 잘 살펴보는 것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구슬이는 넥카라를 뺀 뒤로도 꼬리나 눈을 유독 많이 그루밍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구슬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쓰다듬어주는 것들을 허락했다.

캣타워는 구슬이의 완벽한 아지트가 되었다. 마치 나무에서 사는 원숭이처럼, 구슬이는 캣타워에서 살았다. 무엇을 먹을 때만 슬슬 내려와서 먹고는, 다시 캣타워로 올라가는 구슬이를 보며 다시 한번 내가 고양이와 함께 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아내와 다이소에 갔다가 캣타워에 설치할 수 있는 작은 장난감 하나를 사 왔다. 그것까지 설치했더니, 캣타워는 더 완벽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캣타워가 좁아 보여, 추가로 캣타워와 캣폴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스스로 몇 번이나 자제시켰다. 구슬이가 우리에게 아직 세 들어 살고 있는 고양이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슬이는 지금 아이들의 놀이방에서 살고 있다. 큰딸은 내년이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데, 원래 나와 아내의 계획은 두 딸에게 아이들의 방을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아직 두 딸이 우리와 잠자리 독립을 하지 못한 상태라 아침이 되면 특히 아내가 많이 피곤해했고, 아이들이 실제로 잠자리 독립할 때가 지난 것도 맞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나와 아내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아이들에게 방을 내어주면, 구슬이는 거실로 나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옷가지와 잡동사니들로 어지러운 거실에 구슬이를 두면 안 될 테니까.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요즘 구슬이의 미래에 대해 고민이 생겨 머리가 아플 때면, 내 결론은 항상 하나다.

'아, 머리 아파. 나중에 생각하자.'


구슬이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gooseul_cat

매거진의 이전글 11. 캣타워(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