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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Shine Dec 21. 2022

17. 최애 인간

언젠가 TV를 보다가 자녀와 부모의 관계에 대해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과학적인 근거가 어느 정도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이를 많이 낳으면 부모의 권위가 더 올라간다는 말이었다. 옛날 아이를 많이 낳던 시절에 부모의 권위가 높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으며, 이유는 아이들이 서로 부모에게 더 사랑받기 위해 부모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를 적게 낳으면서, 오히려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양새가 되었다나. 아무튼 그럭저럭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웃으며 봤던 그 내용이 요새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구슬이는 외동묘다. 실은 외동인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우리 집의 4명의 사람이 구슬이를 모두 좋아하고, 구슬이에게 애정을 갈구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원래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던 나와 큰딸은 물론이고, 아내도 원체 동물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며, 둘째도 구슬이와 함께 하며 구슬이의 매력이 점점 빠져들고 있는 듯하다. 아직 고양이를 하나의 생명으로까지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둘째를 제외하고서라도, 최소 우리 집에 거주하는 사람 세 명은 구슬이에게 애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럼 구슬이의 최애 인간은 과연 누구일지 한 명씩 천천히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말이 좀 거창하기는 하다.)

먼저 사랑하는 나의 아내. 나에게는 최애 인간이지만, 구슬이에게도 그럴까. 아내는 내 주변의 사람 중 감성이 매우 뛰어난 사람 중 한 명이며,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밤 10시에 구슬이에게 간식을 주는 것이 하루의 즐거움 중 하나인 사람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다가도 중간에 광고가 나올 때면 구슬이 방으로 들어가 구슬이에게 인사를 한다. 구슬이가 싫어하는 것, 그러니까 발톱을 깎는다거나, 안약을 넣는다거나, 목욕을 시키는 등의 일은 일절 하지 않는다. 단, 요즘 아내는 나보다 더 늦게 퇴근하는 일이 많아서 구슬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 간단히만 생각하면 구슬이가 좋아할 만한 구석을 모두 갖춘 것으로 보인다. 단, 일주일에 한 번 구슬이 방에 짐을 모두 빼고 대청소를 하는 모습은 구슬이가 싫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구슬이는 아내를 밥순이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일단 구슬이의 밥은 대부분 자동급식식기가 책임지고 있다. 우리가 구슬이에게 밥을 주는 것은 저녁과 간식 정도인데, 그 중 간식을 아내가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해가 지고 시간이 지나면, 밥이나 간식을 주는 존재가 딱 맞는 듯하다. 당연히 아내를 향해 하악질 등의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밥을 주지 않으면 아내의 이곳저곳을 깨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밤에 구슬이가 아내를 향해 '야옹'하는 날이면, 나는 옆에서 구슬이의 언어를 우리 언어로 바꿔 추임새를 넣는다.

"밥순아, 밥 가져와라! 밥 주라고!"

그럼 아내는 바로 웃으면서 구슬이를 보고 이야기한다.

"엄마가 밥 줄까?"

다행히 아내는 그런 구슬이가 밉지 않은 것 같다. 누구보다 구슬이를 귀여워하고, 속으로 많이 걱정하고 있다. 구슬이 눈이 많이 아팠을 때 병원비 걱정하지 말고 병원 다녀오라고 이야기한 것도 아내였으며, 구슬이의 눈 크기 변화를 누구보다 예리하게 감지하는 것 역시 아내다. 처음에 구슬이를 데려와서 아내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에 구슬이 관련 물품을 내 용돈에서 구입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생활비에서 그냥 구입하라고 이야기해준 것도 역시 아내다. 구슬이 입장에서는 어떨까? 사냥의 대상일 수도 있겠으나, 내 아내를 누구보다 고마워하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매일 일을 다녀와서 밥을 주고, 일주일에 한 번 방안을 완벽하게 깨끗이 만들어주는 아내를 진짜 '든든한 보호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제삼자의 입장에서 지켜보기만 했을 때는 아직 '밥순이'이긴 하지만. 아무튼 아직 나의 아내는 구슬이의 최애 인간까지는 아닌 듯 보인다.


구슬이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gooseul_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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