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는 사냥감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본래 고양이는 사냥감을 잡아먹는 것으로 사냥을 마무리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사냥 놀이에서는 수확물을 얻을 수가 없기에, 간식 등의 보상을 통해 사냥의 성과를 고양이에게 느끼게 해주곤 한다. 그렇기에 구슬이에게 사냥감이 무엇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처음부터 먹을 것을 골라 사냥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슬이에게 사냥감이란 그저 자신의 눈앞에서 움직이는, 때리거나 물고 뜯고 싶은 물체일 뿐이다. 그런데, 구슬이가 아내의 손과 발을 사냥감으로 인식한 것이 그 문제의 시작이다.
내 아내는 소위 말하는 고양이 마니아는 아니다.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많은 편도 아니고, 그것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나 혹은 큰딸에게 물어보며 구슬이를 돌봐준다. 물론 구슬이를 돌보는 것은 거의 나의 책임이기에 아내는 아이들을 케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런 아내가 밤 10시가 되면 구슬이 방에 들러 간식 하나를 주는 것이 루틴이 되었는데, 그 루틴이 생긴 뒤 구슬이는 아내만 보면 '야옹'하며 울어댔다. 그리고 점차 뒹굴며 애교를 피웠는데, 나중에는 손을 약하게 깨물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라는 인식을 미처 하지 못하고 웃으며 받아주어 버린 것이다.
구슬이는 이제 아내를 사냥감으로, 아내에게서 나오는 간식을 사냥의 보상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아내가 나타나면 '야옹' 소리와 함께 손과 발을 향해 힘껏 달려가 깨물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나는 아내에게 깨무는 순간 자리를 피하고, 깨물 때는 절대 간식을 주지 말라고 전해둔 상태이다. 가끔은 내 발을 보고도 달려들 때가 있어 간혹 놀라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슬이가 사냥에 심취해 있는 모습은 귀여운 것이 사실이다. 물론 주관적인 나의 시선에서 보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우리 딸들이 야밤에 구슬이의 사냥 모습을 직관할 수 없다는 사실은 참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정말 사냥 놀이를 흠뻑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우리 딸들이며, 그 모습을 보면서 가장 구슬이를 귀여워해 줄 수 있는 사람들도 바로 우리 딸들이니까.
나는 요즘 구슬이에게 일어나는 일들과,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렇게 글로 쓰고 있다. 내가 글로 쓰는 곳은 보통 구슬이가 있는 방 책상 위이고, 시간은 보통 아이들이 자고 난 뒤인 밤중이다. 다름 아닌 구슬이의 사냥 본능이 가장 활활 타오르는 때인 것이다. 구슬이는 이제 점프를 해서 책상 위로 올라오곤 한다. 그리고 노트북 뒤에 숨어,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는 나의 손을 호시탐탐 노리다가 내 손에 솜방망이 펀치를 날린다. 그리고 책상 밑으로 내려가서 조용히 나를 관찰하다가, 갑자기 내 발을 향해 또 솜밤망이 펀치를 날린다. 나는 우리 딸들을 교육하듯이 '어허'라고 근엄하게 이야기하지만 구슬이는 내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구슬이가 아주 어릴 적, 삶의 위기에서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구슬이의 생사를 결정해버린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다. 물론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그에 대한 책임은 내가 가지고 가야 할 부분이다. 그렇기에 구슬이의 본능들을 충족시켜주며 살아야 할 것이고, 그중 하나인 사냥 놀이를 통해 구슬이의 사냥 본능 역시 채워주어야 할 것이다. 훗날 내 손이 구슬이에 의해 할퀼 수도 있고, 더 가슴 아프게 내 딸들의 팔에 상처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며, 구슬이의 삶을 내가 결정해버렸듯이 그에 대한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구슬이 방에서는 '사냥의 시간'이 펼쳐지고 있다.
구슬이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gooseul_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