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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괴왕 Mar 08. 2019

있으면 안 먹게 되더라

브런치 작가 2주차의 소회

며칠 전부터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투정을 부렸다. 엄마가 집에서 소고기를 1kg 정도 보내왔다. 그런데 나는 택배가 도착한 날부터 치킨이 미친듯이 먹고 싶다. 소고기는 손도 대질 않고 매일 배달어플만 쳐다보고 있다. 치킨을 먹고 나면 다음날부턴 삼겹살이 먹고 싶으리라. 한 스푼씩 떠먹은 하겐다즈 네 통(벨기에 초코, 프로즌 요거트, 딸기, 바닐라), 딸기 1kg, 연근 한 뿌리, 계란 한 판 등이 소고기와 같은 사연으로 냉장고에 머물고 있다. 


나와 동생은 늘 그랬다.

 '너넨 꼭 사다 놓으면 안 먹더라.' 

우리는 한 가지 음식에 꽂히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고 통큰 엄마는 '쌓아놓고 먹으라'며 한 박스, 두 박스 씩을 사다놓곤 했다. 그런데 그토록 원하던 음식을 냉장고에서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게서 흥미를 바로 잃고 마는 것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나 못먹게 된 초콜릿이나 과자를 버리는 일은 엄마의 주기적인 업무였다. 


혼자 살 때도 이런 일이 잦았다. 이걸 좀 고쳐볼까 생각한 건 엄마랑 살 때와 달리 지금은 내 뒤치다꺼리를 스스로 해야하니 음식 버리는 귀찮은 일이라도 좀 줄여보고자 해서였다. 그래서 오늘도 냉장고 문을 열고 음식 몇 개를 해치우려는 시도를 했다. 하겐다즈를 한 스푼 씩 더 떠먹고, 계란을 삶아먹고 후식으로 딸기 몇 알을 주워 먹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가서 맛있는 빵을 사왔다. 냉장고에 짐이 늘었다. '사다 놓으면 안 먹는 심리', '다 잡은 물고기', '냉장고 심리' 등 각종 키워드를 구글링 해보았으나, 아직 학계에서도 이 요상한 변덕에 대해서는 규명한 바 없는 모양이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2주가 됐다. 한 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기 때문에 좀 더 간절했다.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주고 싶어서 새벽 내내 노트북 앞을 떠나지 않았다. 두어달 간 일주일에 두 편은 발행할 수 있을 정도로 글감을 모아놨다. 작가가 됐다. 이제 쓰고 싶던 글을 마음껏 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글이 쓰기 싫어졌다. 작가 신청용 글을 빼고 글다운 글은 겨우 한 편을 썼다. 그것도 브런치에 올리려던 건 아니고 다른 필요가 있어서 쓴 글이다. 글을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으면 유튜브를 켜게 된다. 간단한 일기마저도 쓰기가 귀찮다. 한 입 씩만 먹은 아이스크림처럼 한 두 문단 쓰다 만 글들이 서랍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사람 심보가 이렇게 고약하다. 나도 참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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