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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괴왕 May 07. 2019

글로 멀쩡하기

글쓰기는 정말 고통이다. 뭐가 제일 고통이냐면 내가 멀쩡하지 않아도 그걸 멀쩡한 언어로 고상~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설득을 위한 글쓰기를 해야 할 때 그렇다. 설득을 위한 글쓰기는 주장도, 표현도 모두 멀쩡~하고 고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별 갈등 문제에 대해 글을 써야 할 때. 내 솔찍헌 심정은 '아니 왜 이걸 가지고 지랄이지? 지들이 뭘 그렇게 손해 본다고? 왜 처음부터 다 자기 몫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어느 쪽이라곤 말 안 함)'이지만, 글로 표현할 때는 '그들'이 불만인 이유를 각종 데이터와 근거를 이용해 논리~적이고 고상~~~ 하게 말해야 한다. 나조차도 그 근거가 납득되진 않지만 말이다. 글쓰기는 정말로 가식과 가증의 영역이다.


남의 글을 볼 때 이런 생각은 더 강하게 든다. 논리보다 똥고집으로 의견을 고수하는 A는 자기 블로그에서는 그렇게 논리적이고 차분한 사람일 수 없다. 그는 여성에 대한 품평을 종종 하고 어린 여성을 좋아한다. 각종 여성정책에 대해서는 아주 감정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한다. 하지만 그가 글을 쓸 때는 여성의 외모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며, 여성 정책에 태클을 걸 때는 '진정으로 여성을 위해서'라는 고상~하고 같잖은 해명을 덧붙인다. 나는 그의 실제 모습을 알아서 다행이지만 글로만 그를 아는 사람은 그가 진정 가슴으로 성평등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B는 무논리가 최고의 논리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는 것만큼 에너지 낭비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말보다는 주먹이 더 설득력이 있지만 세상엔 법이란 게 있고 윤리라는 게 있고 자신보다 더 센 사람이 많아서 주먹을 쓰지 못하는 것이 그는 늘 통탄스럽다. 그는 매일 자기 전에 눈 뜨면 캡틴 마블과 같은 강한 힘을 가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그러나 그의 글은 다르다. 하나의 주장을 설득하기 위해 각종 데이터와 사례를 끌어다 쓴 흔적이 역력하며 행여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미리부터 변명하고 돌려 말한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에세이를 쓸 때도 그렇다. 인류애가 소멸한 지 오래고 인간보단 귀여운 포유류가 더 생존 가치가 있다고 믿는 그지만 그의 글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넘친다. 역시나 그를 아는 나로서는 그의 글을 볼 때마다 후플푸프의 반장이 된 볼드모트를 보는 느낌을 받는다.


B는 사실 나다. 나는 과거(래봤자 몇 주 전, 며칠 전)에 내가 쓴 글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공격성과 염세성이 삐져나온 문장에서야 겨우 이것이 내 글임을 안다. 어쩌다 정말 잘 써진 '웃어른에게 보여줘도 될 글(예를 들면 자소서)'을 볼 때면 나는 글 속의 나와 글을 쓰는 나, 그리고 글을 읽고 있는 나 세 사람이 서로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의 분노, 결핍, 희의는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멀쩡하고 건장한 새 시대의 청년은 누구란 말인가. 그러고는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같은가?'와 같은 철학적 고뇌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릴 때는 글깨나 끄적이던 나도 업으로는 글쓰기를 택하지 않았다. 나는 고상~하지 않은,  굉장히 공격적이고 염세적이고 무논리를 사랑하는 인간이다. 100개의 단어보다 '헐'이나 'X발'로 감정을 표현하길 좋아한다. 그리고 음침하지만, 내 모든 분노, 결핍, 회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밥벌이 수단으로는 완전히 제외시켰다. 아니 분명 그랬는데.. 그런데.. 왜.. 맨날.. 글쓰기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사실 이 글도 말로 했으면 절반이 쌍욕이었을 것이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인가. 이 글을 쓰는 나는 내일의 나일까. 나는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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