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잘 못한 자기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세요 사장님
회사에서 매달 초마다 월례 회의를 한다. 말이 회의고 회사의 임원들이 나와서 직원들에게 일장연설을 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는 자리다. 나는 이 월례회의의 연설 시간에 사장이 직원들을 칭찬하거나, 직원들에게 공을 돌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연설의 주제는 대체로, 성실하게 일해라, 열정을 가져라,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해라.. 그리고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그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이 시간에 잠이라도 더 자면 오후 업무라도 잘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에 비해 우리 회사 영업 이익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어쩌라고.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각자 자리에서 각자의 몫을 다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그 이상의 열의를 보일 때라고 한다. 아 점심때 회사에 있는 컵라면이나 하나 조질까. 변화에 민감해야 한단다. 살 좀 찐 거 같은데 라면 그냥 먹지 말까. 부족한 부분을 외면할 게 아니라 반드시 채워나가야 한다고 한다. 집에 물이 남아있던가? 장을 좀 봐야겠네. 모두가 협력하고 서로를 배려하자고 한다. 오늘은 반드시 운동해야지!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말. 진짜 '어쩌라고' 싶은 얘기다. 회사 사정이 나쁘지 않았던 지난해에는, 그 성과에 대한 몫이 모두에게 배분됐을까? 절대 아니다. 여러 번 말하지만 이곳은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회사다. 대신 회사 사정이 나쁘다는 핑계로 법인 카드 이용 기준이 강해졌고, 누군가의 임금이 동결됐다. 아 참 우리팀은 법인 카드도 주어지지 않아서 나와는 큰 상관이 없긴 하다.
내 회사도 아니고 회사에 좋은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회사 사정이 어렵다 그러면 내가 일을 열심히 하겠냐, 탈주 준비를 하겠냐?
오너들은 이걸 모르는 듯하다. 회사 사정이 어려운 건 회사가 직원을 부려먹고 임금이나 복지를 줄이는 좋은 사유가 된다. 회사는 사정이 어려운 것이 직원들의 탓이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고 믿는다. 어떤 부품이 고장 나서 기계가 작동을 안 하면, 그게 부품 탓일까 부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자의 탓일까? 격려를 해도 모자랄 판에 그걸 직원들의 열정 탓을 하고 앉았으니 정말 갑갑할 따름이다.
회사 사정이 어려운 것은 경영을 못한 자의 잘못이다. 직원들의 탓을 할 게 아니라 올바른 전략을 짜지 못하고 똑똑한 선택을 하지 못한 최종 선택자가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아야 하는 일이다. 머리를 쥐어박은 뒤에는? 직원들을 돈과 복지로 격려해야 한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해줬지만 제가 부족해서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습니다. 제가 더 열심히 할 테니 여러분들도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사정이 나아지면 그 몫을 반드시 배분하겠습니다.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