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 S의 부서 이동이 있었다. 정확히는 '업무 분리'다. S와 팀장 A(나를 후려치던 그 상사 A다. https://brunch.co.kr/@googoo99/57)의 관계가 나빠졌는데, 상사 A가 윗선에 '얘랑은 도저히 일을 못하겠다'라고 전했기 때문이다.
S는 원래 A에게 가장 충실했던 직원이다. 나는 정말 입사 초에.. S에게 A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묻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S가 A에게 불만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S는 A의 기분을 열심히 맞춰주고 A가 마구 던져내는 일을 열심히 소화해냈다.
그런 S가 모종의 일들로 A에게 등을 돌렸다. S는 A에게 여러 번 불만을 터놓은 적이 있으나 A는 이를 해결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이는 S가 A에게 정을 떼기 충분한 이유가 됐다. 예전처럼 수다를 떨지 않고, A를 반기지 않았으며, A의 말에 열정적인 리액션을 보이지 않았다. S는 묵묵히 일만 열심히 했다. 다른 팀원과는 평소처럼 대화했다.
A의 입장에서 S의 태도 변화는 당혹스러웠고, 괘씸했을 것이다. A는 S를 포함한 팀원 전부와 개인적인 면담을 했다. S에게는 '내게 무슨 불만이 있냐'라고 물었지만 대화의 의지를 상실해버린 S는 '없다'라고 말했다. 불만이 있어도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A는 자신의 문제를 고치지 않을 테니 너의 태도를 바꾸라고 먼저 선언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른 팀원들도 A와 면담을 했다. A는 S의 태도가 상사에게 적절한 태도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A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했다. A는 내게 '지금의 분위기가 불편하냐'라고 물었다. 나는 전혀 아니라고 했다. S와 A가 분위기가 좋을 때는 사무실이 항상 시끄럽고, 모두가 A의 대화 상대가 되기 바빴다. 사무실 분위기가 냉랭해지고 나서야 나는 잡담 없이, 불필요한 감정노동 없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분위기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두 번째 면담 상대는 임원이었다. 임원 C는 우리 팀원을 여러 번 불러내 티타임을 가졌다. 그는 내게 카페에서 제일 비싼 메뉴를 사주며 '솔직하게 답하라'라고 했다. 그의 질문은 단도직입적이었다.
임원 C : 너희 팀장이 문제냐, 팀원이 문제냐?
나 : 팀장님이 문제입니다.
그가 카페에서 제일 싼 메뉴를 사주었어도 나는 솔직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상사에게 잘 보이는 입 발리는 소리를 한다고 내게 이득이 오지 않는다. 나는 솔직하게 느꼈던 바를 말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팀장이 팀에 애정이 없다'는 것이 나의 요지였다. C는 내 말에 일부 공감했다. 팀장 A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에게 지금 가장 우선적인 것은 가정이었고, 그 이유로 회사에서 일부 특혜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팀장과 트러블이 있던 직원 두 명(S와 또 다른 직원 L)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는 팀장님과 마찬가지로 그 두 사람이 꼭 팀에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내가 팀장에게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아직 업무에 서툰 내가 가장 많이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들이 팀을 떠나지 않길 바랬다.
나 말고 다른 팀원들도 의견이 비슷했다. 팀장 A에게 문제가 어느 정도 있다는데 동의했으며, S의 행동이 잘했든 잘하지 않았든 누구도 S의 부서 이동을 원치 않았다. S 그 자신도 그랬다. 이런 어필들이 무색하게 S의 타 부서 파견 명령이 떨어졌다. 이른바 '업무 분리'였다. '업무 분리'는 회사가 내릴 수 있는 가장 간사한 선택이었다. 타당한 이유가 없는 당사자가 원치 않는 부서 이동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회사는 이를 피하기 위해 소속 부서를 그대로 둔 대신, 타 부서로 무기한 업무 파견 명령을 내린 것이다.
지난 화의 비유를 빌리자면, S 또한 아이돌 업무가 하고 싶어서 아이돌 팀에 지원한 사원이었다. 툴툴대는 나와는 다르게 S는 회사가 아이돌 업무를 주든, 트로트 업무를 주든 그걸 열심히 해냈다. 그런 그를, 상사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다는 이유로 판소리 부서로 파견을 보내버린 것이다.
이 명령에 가장 화가 난 것은 당연히 S였다. S가 절망했다가 분노했다가 초연해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S가 지금까지 팀장 A에게 충성해왔던 것은 참작 사유가 되지 못했다. 충성했기 때문에 보복은 더 날카로웠다.
S는 S대로 억울하고 나는 나대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S는 우리 팀의 주축이다. 원래는 S보다 선임인 사원이 있었는데 그는 회사에 질릴 대로 질려서 이곳을 떠났다. 우리 팀의 '업무상' 균열은 그때부터였는데 그걸 메울 만한 역량이 있는 것이 S였다. 아이돌 팀으로 따지면 메인 보컬이나 메인 댄서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가 업무 분리 조치를 당하고 나서 남은 업무는 나와 팀장 A가 나눠가졌다. 다른 직원도 있긴 한데, 그는 이미 S와 A의 사이가 소원해졌을 때부터 대부분의 업무를 감당하고 있었다. S는 판소리 부서에 파견된다는 사실만 알았지 아이돌 업무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은 전달받지 못했다. 당연히 인수인계하는 과정도 없었다. 내가 S를 별도로 불러내서 모르는 걸 물어보는 식이었다. 나는 이것이 업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너무 불편했다. 회사는 S 하나만 치우면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지만 남은 사람들이 어떤 지는 고려를 전혀 하지 못한 듯했다.
하긴 그걸 알았다면 오래 일한 직원들이 도망치듯 회사를 나갔을 때부터 뭔가 조치가 취해졌을 것이다.
S가 나가고 A는 활기를 되찾았다. 남은 사람들에게 즐겁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남은 직원들은 전성기의(?) S 만큼 리액션이 활발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수다를 싫어한다. 상사의 TMI를 듣고 싶지 않아 한다. 남은 직원들의 A에 대한 불만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A는 그대로고 사원들의 상황만 모두 달라졌다.
S와 A의 갈등 과정은 일부러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는 이 과정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다만 이런 갈등을 매니징 하는 상사와 회사의 방식을 탓하고 싶다. 부하 직원이 잘못했다는 판단이 들면 그걸 바로 잡아주는 게 먼저여야 한다. 갈등이 있다면 갈등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고, 모두가 하나같이 같은 문제를 이야기한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맞다. 갈등 분자 하나를 눈앞에서 치운다고 해서 갈등 자체가 사라지진 않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사무실의 분위기가 역하다. 빨리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