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끼리 싸워야 할까
오랜만에 글을 쓴다.
나는 여전히 나쁜 회사를 탈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내 족쇄가 풀리고 나는 언제든 이직할 수 있는 몸이 된다.(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쓰겠다.)
마지막 글을 쓰고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진급을 했고, 여전히 체계 없는 모래성 같은 우리 부서에서 나는 세 번째로 직급이 높은 사람이 됐다. 겨우 주임인데 말이다. 내 밑으로 신입사원들도 들어와서 예전처럼 어리바리할 수도 없다.
본격적으로 담당하는 업무가 생기고 여러 프로젝트에 투입이 됐다. 나 홀로 투입이 됐기 때문에 타 부서 혹은 협력사 응대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프로젝트에서 나이로나 경력으로나 막내 뻘이었지만 나는 깨나 뻔뻔했다. 누가 나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하면 나는 그걸 그대로 받아쳐서 또 상대 탓을 했다. 내 업무 처리가 부족했을 때 겉으로만 사과하고 느긋하게 수정하는 싸가지도 습득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아주 나쁜 놈 같지만(맞음) 내 책임은 다 하면서, 나름 누울 자리를 봐가면서 드러누운 거다.
일을 할 때 내가 한 발 양보하면 모든 걸 독박 쓰게 되니까 나도 모르게 공격적인 사람이 된다. 추가 요구 사항이 있으면 눈살부터 찌푸리게 되고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는지를 따져 묻는다. 이게 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배운 거다. 그러고는 자기 전에 천장을 보면서 "아까 왜 그렇게 못돼게 굴었을까" 후회하며 잠을 뒤척인다. 다음날이면 다시 온몸에 가시가 돋는다. "이걸 한 번 해주면 계속 요구할 거야. 절대 양보하지 말자."
내가 친한 직원들과 있을 때 다른 사람 험담을 하듯이 나와 함께 일했던 다른 사람들도 뒤에서 내 욕을 할 것이다. 괜찮다. 이해한다. 우리 회사 사람들 그 누구도 나쁜 사람은 없다. 일 얘기만 아니면 그들은 그냥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고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그냥 사람 말이다.
어떤 매니저님은 글 쓰는 걸 좋아해 틈틈이 글을 쓰고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다고 한다. 어떤 부장님은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처가 식구들을 주말에 초대해 대접하는 것을 즐긴다. 수줍음이 많아 보이던 대리님은 오락실 농구 게임을 좋아하고 아주 잘한다. 매일 쌍욕을 하며 일을 하는 어떤 엔지니어는 오타쿠다. 회사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책임님은 귀여운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퇴근 후에 마음 편하게 글을 쓰고, 요리를 하고, 슛을 던지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고양이와 장난을 치고 싶으니까 우리는 업무 시간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회사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관심이 없고 일단 돈이 되는 일을 던져준다. 인력에 비해 업무량은 터무니없이 많다. 시간은 늘 촉박하다. 이 일에 능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들키면 책임이 돌아온다. 능숙한 걸 들키면 모든 일은 이 사람에게로 향한다. 내가 모든 일을 떠맡지 않아도 되고 질책받아도 되지 않은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며 우리는 함께 일을 한다. 발을 헛디디는 사람은 퇴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주말에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인상을 쓰고 신경을 곤두세워 대화를 한다.
며칠 전 상사에게 내 업무에 대해 불만을 늘어놨다. 상사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상사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는데도 터져 나오는 투정을 참을 수 없었다. 동시에 너무 갑갑했다. 왜 맨날 우리끼리 싸우고 있을까. 누가 이겨도 돈을 더 가져가는 건 회사의 오너고, 더 나은 업무가 주어지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동시에 두려워졌다. 만약에 다른 회사를 가도 이러면 어떡하지? 이게 '회사'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라면 나는 무엇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신문에서는 너도나도 채용 한파 소식을 전하고 있다. 회사가 갑이고 구직자, 재직자는 을이라는 이야기다.(채용 한파가 아니라도 그렇지만) 당분간은 어디로 도망치기도 힘들어 보인다. 내일은 아무와도 싸우고 싶지 않다. 정말 싫어 죽겠는 우리 회사 사람들이 그래도 행복하면 좋겠다. 저한테 말은 걸지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