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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Feb 05. 2021

병원은 분명 슬픈 공간이다.

7.

죽음이 맞닿은 공간.


회진 시간에는 선생님들이 모여 아이들의 상태를 한 번씩 체크한다. CPR검사(채혈을 통해 급성 염증성 질환 등의 치료의 경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검사), 심정지, 폐수종 등 이런저런 심각한 용어들이 귀를 떠돌기 때문에 사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몇 되지 않는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수술을 한다던가, 검사를 한다던가, CT를 찍는다던가 정도만 알아듣고 흘러 넘겨버리는 편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외출'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개인적으로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병원의 동물들도 입원 후에 외출·외박을 한다는 것인데, 치료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상태가 안정화되면 잠시 집에 들러서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병원에 돌아오곤 한다는 뜻이다. 동물들도 사람처럼 제 집의 일상이 그립다는 뜻일까.


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아니기 때문에, 동물들의 표정과 감정을 하나하나 모두 읽을 순 없지만 외출을 다녀온 아이들을 보면 꽤나 표정이 상기되어 있다는 것만큼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짧은 시간에 보호자를 만나 방방 뛰던 모습이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질 때마다 '어서 퇴원해라' 마음으로 기도한다. 사실, 병원을 회사처럼 다니는 입장에서 고객이 빨리 나간다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서 나갔으면 하고 늘 생각한다. 


환자들이 입원실을 꽉 채워 하루 종일 울음소리가 꺼지지 않는 날도 있지만, 반대로 몇몇 아이들만 남아 병원 자체가 고요에 빠지는 날들도 있다. 회사 입장에서야 전자가 좋겠지만, 직원 입장에서야 반가운 건 후자에 가깝다. 조용한 날에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직원들이 모여 대청소를 하곤 한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약품들을 채워 넣거나, 여기저기 청소를 하거나, 아이들을 케어하는 데 사용했던 물품들을 모아놓고 정리하곤 한다. 신기한 건, 이처럼 여유롭게 병원을 정리하다가도 응급환자가 들어오면 선생님들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붉은색 조명(위급상황을 알리는 등)이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엄숙하고 진중한 분위기가 병원을 뒤덮는다. 사무실에서 조용히 일상을 엿듣다가도, 갑자기 조용해지는 순간이 오면 대부분 응급 상황이구나 하고 눈치껏 지내게 되었다.




나는 병원 내부를 돌아다니며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걸 즐기는 편이다. 아이들을 보러 나왔다는 핑계로 선생님들의 주위를 돌아다니는 게 병원 내 유일한 취미인 셈이다. 매사 호기심이 많은 편이기에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던지는 편인데 어떻게 수의사가 되었는지부터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의 삶까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내가 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리 병원은 24시간으로 운영되다 보니 내가 퇴근 후의 라이프를 보내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돌아간다. 때문에, 아침에 도착해서 병원을 한 바퀴 돌면 익숙하던 아이들이 떠나고, 못 보던 아이들이 입원해있는 경우가 많다. 매일매일 환자가 바뀌어가는 병원의 루틴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같은 생각을 종종 한다. 오늘도 그랬다. 나는 아이들의 일과를 살피는 척 농땡이를 피우다가, 익숙하게 보던 아이가 보이지 않아 선생님께 물었다.


"격리 입원실에 있던 애는 퇴원했어요?"

"아, 어제 무지개다리 건넜어요, 안락사했어요."


그 덤덤하고도 낯선 말에 나는 쿵하고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매번 평범한 질문에 평범한 답을 해주던 수의사님이 가장 평범하지 않은 답을 하는 순간이었다. 몇 달간 병원에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안락사로 말이다.


격리 입원실(전염성 환자의 감염위험을 막기 위해 따로 격리되어 치료받는 입원실)에 입원되는 아이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파보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디스템퍼 등 낯선 이름의 병명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질병 모두 전염의 위험성 때문에 단독으로 설계된 입원실에서 생활하게 된다. 담당 의료진이 관리를 하고, 소독과정도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전염성 질환이 다른 아이들에게 옮겨지지 않기 위한 기본 수칙이다. 이처럼, 까다로운 관리를 받는 아이 들인 만큼 그 위험성도 크다. 발작을 일으키는 건 기본이고, 약의 기운 때문에 종일 누워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남들처럼 짖는 것도 힘들어 구토로 답을 대신하기도 한다. 성견이나 성묘가 아닌 어린아이들일수록 위험성은 더욱더 커진다. 이번에 격리 입원실에 입원한 아이는 태어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작은 아이 었다. 까만색 눈동자를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몸에 발작을 일으키던 조그마한 강아지였다.


지나칠 때마다 아이의 버거운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여긴 병원이니까' 같은 안이한 생각을 했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치료의 공간이니까, 때가 되면 늘 건강한 모습으로 보호자와 함께 문을 나섰으니까 말이다.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을 퇴원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분명히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무지였으며 오만이었다. 나의 무지에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팠다. 이러한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어리석음보다 이 공간에서 얼마든지 죽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두려워진 탓이었다. 하루 종일 촬영이 잡혀있었는데 정신을 어딘가로 팔고 작업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


기침과 설사를 이어가던 아이가 전신발작을 일으키고 끝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죽는 것보다 살아있는 것이 더욱 버거운 아이, 남은 생의 모든 순간을 고통으로 보내야 하는 아이는 결국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모든 안락사에는 수의사의 판단과 보호자의 결정이 따르며,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안락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그 결정에 '동의'를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필요했을까. 감히 짐작하기 조차 어려운 마음이다. 




나는 병원에서 일한다. 이러한 사실은 나의 자부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물밀듯이 밀려오는 나의 슬픔이기도 하다. 죽음 앞을 아니, 죽음 근방에도 다가서 보지 못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이러한 일들이 눈 앞에 닥칠 때마다 나는 가끔 어질 할 정도로 머리가 아프다. 병원이란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병원이 가진 본질적인 의미를 잃고 사는 순간이 많다. 더욱이 동물병원이니까,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으니까, 그 동글동글한 눈으로 나를 안아달라는 듯 나를 또렷하게 쳐다보는 순간들이 훨씬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병원은 생각보다 알코올 향이 많이 나고, 대형 장비들이 수시로 돌아가며, 뾰족한 주삿바늘과 쇠 부딪히는 소리가 훨씬 많이 나는 공간이다. 


살아있는 것만큼 죽음과 맞닿은, '언제든지 심정지가 올 수 있으니까 수시로 확인해야 해요'라는 소리가 하루 일과 속에서 들리는 곳. 수의사도 테크니션 선생님도 아닌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본 동물병원은 그런 낯선 장소에 가깝다. 누군가에겐 일상처럼 흘러가는 죽음이 아직은 낯설고 두렵다. 브라운관 너머로 병원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저건 나랑 완전 다른 세상이잖아?'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정작 나 또한 그런 세상을 담는 가장 가까운 인간이 되어있었다. 때로는 피가 흐르고, 누군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공간에서 하루의 절반을 보내야 한다는 게 생각보다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집에 돌아가서도 한참 동안이나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느낌인지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소름이 끼친다기보다 표독스러운 무기력감이 내 온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수의사를 선망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동물을 보살피고, 치료해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렇지만, 이런 가치들로 아름답게 포장해 나가기엔 병원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너무나 크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동물을 때론 내 손으로 죽일 수도 있고, 죽여야 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고통에 못 이겨 신음을 이어가는 모습을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꺼림칙한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미국에선 해마다 수의사들의 자살률이 늘고 있다. 더 많은 죽음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수의사들을 마냥 괴롭게 하는 건 진상 보호자, 사회적인 시선 같은 것뿐만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근본적인 사실이 수의사들을 괴롭게 하는 게 아닐까. 


취업하기 전에 나를 아는 누군가가 '그 사람 대단하네, 병원에서 일할 생각을 하고 많이 힘들 텐데'라고 건너 이야기하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그 말을 그냥 흘러 넘겼지만, 이제야 아득하니 그 말이 떠오른다. 병원은 분명 슬픈 공간이다. 때론, 누군가는 그걸 알았으면 좋겠다.


※ 원문에 게시되는 글은 모두 의학적 소견이 아닌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자세한 증상이나 문의는 가까운 동물병원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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