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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Feb 12. 2018

" 글로 살아남기 "

글을 쓰게 되기까지.

브런치가 처음으로 나를 작가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내 첫 글은 중학교 시절, 교실 창문 근처에 끝자리 어딘가에 앉아 고개를 푹 떨군 채 손에 힘을 주어 빈 노트에 펜을 꾹꾹 눌러써가던 것에서 시작된다. 목적이나 방향 없이 해소한다는 감정이 좋아 휘갈겨 쓴 그때의 글들은 이미 나의 우주에서 소멸돼버린 지 오래되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글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면 도통 좋지 않은 기억만이 떠오르는데 그중 하나가 선생님께서 쓸모없는 짓이라고 몇 시간을 걸쳐 쓴 글 노트를 짓이겨 버렸던 일, 그것만큼은 혹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 배웠던 건 '글은 쓸모없는 짓'이라는 의식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꾸준히 글을 썼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에 대한 고찰을 쓰기도 했고, 개인의 생각을 담아 주저리 떠들어대기도 했고, 때론 아픔이나 상처에 관한 일들을 타인에게 설명하려 들기도 했다. 정립되지 않은 글을 써 내려갈 때 흥미가 생겼었다. 아무 글이나 뱉어도 작가가 될 수 있는 것만 같았다. 소위 말해 글을 '배설' 했다. 하나, 애정을 담아서 쓴 글이 아니라면 스스로에게도 독이 될 정도로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절필을 선언하고 이 어리석은 굴레를 벗어나기로 했었다.


이정표를 잃고 정처 없이 헤매기 시작한 20대, 거칠었고 방황했고 상처받았고 우울하고 무너지고 쓰러지고 망가지고 수없이 불행했다. 나는 나조차 벗어나지 못해서 매일 밤을 울었고, 과거에 옭매여 실수를 반복하고 후회를 연속했다. 평생 사랑받지 못할 운명임을 직감하고 타인에게서 냉대받으며 자존감이 바닥에서 헤엄치던 순간 나는 책을 들었다. 작가의 일생과 글은 불행에서 시작된다고 들은 적이 있었기에 그들의 삶을 통해 위로받고 싶었으며,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이들에게서 이해받고 싶었다. 일회용 짜리 글을 찾기보단 직접 서점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책을 고르곤 했다. 시는 나를 깨웠고, 문학이 나를 위로했으며, 에세이가 나를 구원했다. 그 무렵, 다시 한번 글을 써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나를 위해서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글쓰기가 시작되고 글 안에서 내가 탄생했다. 사랑에 아파서 글을 쓰고, 내 일생이 불행하게 느껴져 글을 쓰고, 가족이 있었기에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났기에 글을 쓰고, 추억하기에 글을 썼다. 독자도 없는 글이었지만 글쟁이라는 이름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꾸준히 글을 써 내려갔다. 이런 글이라도 이해해주고 읽어주는 사람이 한 둘 생겼다. 그 기분이 좋아 글에 욕심이 생길 때에는 천천히 멈추고 생각을 정리했다. 글을 쓰며 늘어가는 페이지와 글자 수마다 영혼이 치유되고 서서히 소생해가는 나를 느꼈다. 내 삶은 여전히 밑바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나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글쓰는 일은 여전히 무섭고 어렵다. 단순한 단어로 시작하여 무조건적으로 써야 할 때에 닥치게 되면 나는 여전히 갈피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작가의 섬세한 표현력을 보거나 다른 이들의 글을 보고 감명받고 위축되기도 한다. 글을 쓸 때에 사진이나 음악에 의존하여 겨우겨우 마무리 짓고 마음을 정리하고, 손을 내려놓아도 며칠 꼬박 걸려서 쓰곤한다. 글 한 번에 생명을 불어넣어 숨쉬게 하는 글의 창조주가 되는 일은 어렵지만 그 결과물을 천천히 읽어 내려갈 때 나는 글쟁이만이 가질 수 있는 오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잉크가 혈관을 타고 쭉 흐르는 기분, 글자 하나하나가 나를 휘감는 그 기분.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 어렵고 무섭더라도 모험하듯 글을 써낸다. 


지금에서야 느끼지만 글에 대한 흑심(黑心) 같은 것이 내 생에 계속 존재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잘 숨겨두었다가도 앞에만 서면 언젠가 티나고 드러나게 되어버리는 노골적이고 솔직한 마음. 다만, 표출할 방법이나 해소할 공책들은 내게 너무 작았었다. 이제 나는 이 넓고 방대한 세상에서 내 우주 한번을 남겨보겠다고 섣부르게 작가로 나서기로 했다. 세상에 나의 흔적을 뿌려 찾지 않는 누군가 때때로 먼지 뒤덮혀진 곳에서 이 글을 발견했을 때 그 한번의 감정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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