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솔 Oct 18. 2018

" 공황장애 "

병원에서.

내가 가진 본질적인 아픔에 관하여.


" 지난번에 말씀드렸을 때 어느정도 생각은 하고 있으셨을 거 같네요 ... 공황장애 입니다. "


의사선생님은 무거운 침묵 뒤로 말이 떨어졌다. 마음의 준비를 했던 터라 담담하리라 생각했는데, 떨어지는 입 앞에서 나는 매섭게 멈춰버렸다. 담담하게 의문을 뱉었지만 가빠오는 숨마저 감출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본격적인 불행의 신호탄 앞에서 나는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순수히 몸을 내어준 격이었다.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는 선생님의 이야기들을 주워담다가도 먼 생각을 했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묘한 부끄러움과 말못할 수치심이었던 걸까,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속죄였을까, 아니면 예기했던 일들에 대한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탓일까.


근래에 자꾸 몸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게 영 이상하다 싶었다. 때아닌 곳에서 호흡이 가빠져 바닥에 몇 번 주저 앉고 나서야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지만, 나는 내가 고장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이 잘못들에 대해 철저히 부정했다.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인데 내가 엉망이라는 것을 눈뜨고 보고싶지 않았다. 몇달 전의 일이 화근이었다.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돌연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 기둥에 몸을 지탱하려 팔을 뻗었는데 거리 감각이라도 상실한 듯 몸이 앞으로 기우뚱 하더니 미끄러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가지도 않았는데 이미 사람들의 시선에 온 몸이 묶여버리고 말았다. 호흡이 가빠오더니 바닥에 꼭 붙은 것처럼 온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주위에서 머뭇대고 별 반응이 없던 때, 내 입으로 도와달라고 말해야 했다. 비참한 모습으로 부축을 받아 내리는데 온 세상이 깜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떠나가는 지하철 소리만 귀에 반복적으로 울렸다. 떠나는 지하철 뒤로 주위의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얼마 안 가 다시 주저 앉고 말았다. 침묵조차 사라진 곳을 나의 울음으로 메우는 일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가벼운 상담 뒤로 병원 복도에 놓인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몇 시간 뒤면 일도 가야하고, 할 일은 산더미 같이 남았는데 그런 것들에 더 이상 개의치 않고 싶었다. 내게 주어진 더 큰 문제 앞에 발목을 묶인채 수갑 없는 속박을 이어갔다. 지금은 당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경종을 알리는 나의 일정들이 나의 마음을 더욱 옥죄고 있었다. 숨막히는 긴장감에 몸을 가눌수가 없어 안정제를 맞았다. 병원에 누워 잠시 생각에 잠길 터였는데, 서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나는 서러움의 무게에 휩싸여 균형을 잃고 반쯤 정신을 놓았던 것 같다. 나의 발목끝에 무언가가 자꾸 깊이 아래로 나를 끌어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두려움에 발을 파르르 떨었다.


습관처럼 괜찮다는 말을 내뱉었다. 모든 상황에서 태연하게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안정시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숨이 턱 하고 막혀 기어이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아무도 괜찮아지는 방법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모든 것을 망쳐버렸고, 모두를 실망시키고,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갈피조차 없는 길에서 스스로에게만 지탱하여 모든 문제를 이겨낸다는 것은 지나치게 끔찍한 일이다. 이따금씩 멈춰서버리는 나의 생의 무던함을 온갖 혼란스러움으로 바꿔 버리는 것은 아마 내가 자초했을지도 모른다. 뭐가 문제인지 말해야 하는데, 종이 몇 자에 적히 나의 증상조차도 이야기 하지 못하고 조용히 읊조릴 뿐이다.


악재로 이어지는 생은 지나치게 버겁다. 더군다나, 악재에 대한 예기도 없이, 원치도 않은 채 마주해야 된다는 사실은 꽤 비참하다. 이것들이 생의 일정한 순간에 있었으면 좋으련만, 어찌 내 생만 순탄치 않게 흘러가는 느낌이다. 어떤 패턴이라도 있다면 마음먹고 기다리기라도 할텐데, 급작스레 다가오는 것들에 허둥지둥 하는 것 조차 나는 버겁다. 가시밭길에서도 나의 발을 짓누르는 이 중압감을 어떻게 견뎌야 할 지 모르겠다. 매일 내 눈가를 짓누르는 생도 녹록치 않다.


내 몸에 여전히 우울한 기운이 맴돌고 있음을 직감한다. 항우울제로는 가볍게 극복되지 않는 본성 같은 게 내 안에 깊숙히 존재함을 여전히 실감한다. 그런 것들로 치유되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때론 조용하게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단념하듯 받아들이기도 하고, 어렵게 밀어내도 해보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갈 뿐이었다. 실제조차 없는 이 감정에서 몇 년을 허덕인다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타인에게 이해를 바라는 일은 날이 갈수록 지겨워진다. 어쩌면, 일련의 바램들이 아스라히 무너지는 것들에 대해 더 이상 미련두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쌓아놓은 방어기제를 수없이 헤집어 놓아도 얼마 가지 않아 모두 재생 되어버리는 이 마음을, 떄론 나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이전에, 첫 우울증 판정 때 내 손을 꼭 잡아주던 어머니가 있었다. 내가 홀로 발을 들인 상담실에서 오직 눈빛과 말에 온 신경을 다 하고 있던 때, 복도에서 그런 아들을 기다려야 했던 당신의 마음은 어땠을까. 행여 당신이 울지는 않았을까, 그 어린 아들을 몇 평 남짓한 공간에 보내놓고 몇 시간을 마음 졸여 기다려야 했을 당신이 나보다 몇 배는 쓰리지 않았을까. 어쪄면 지금의 내가 이토록 나아지지 않는 것 또한 감히 당신을 아프게 해야했던 무수한 벌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병원을 들어가는 길 앞에서 몇 시간을 서성이던 이유 또한 그러했다.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했다고 쉬이 판단하여 주저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 당신 없이 그 길고 어두운 복도를 홀로 걸어야 하는 아들이 여기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불편한 눈빛을 내게 쏘아보낸다. 이제는 괜찮다는 말도 없고, 일찍 끝날거라며 위로해주던 당신도 함께 해주진 못한다. 이전보다 나아지지도 못한채, 어쩌면 더욱 망가져버린 내가 이제는 홀로 천벌에 순응하고 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어머니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이 못되고도 애틋한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고 간혹 새기곤 한다.


예전에는 이따금씩 새로운 것들이 즐겁고 말았는데, 몇 년 채 지나지 않아 공황장애라니. 날이 갈수록 내가 어떻게 변해갈지 몰라서 두렵기만 하다. 여전히 타인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데, 타인을 섣불리 만날 수도 없는 이 기구한 운명앞에서 나는 한없이 무기력해지기만 한다. 타인이 이런 모습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혹여 이상한 표정으로 나에게서 차차 멀어지지 않을까 온갖 두려운 생각들이 나의 관계를 씹어먹는다. 태연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무사히 오늘을 보내면 오늘은 괜찮았구나 하고 가엾게 버텨내고 기대에 부푼 내일 앞에서 무수하게 쓰러지고 만다.


언제가 되어도 남아있어주겠다는 너는 지금 어디로 떠나버린 건지 모르겠다.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더라도 좋으니 우리 그렇게 위로만큼은 되어주자던 너의 소식조차 나는 담아 듣기 힘들다. 이 모든 것들이 괜찮다고 해줄지도 모르던 네가 없어진 뒤로 크진 않지만 많은 것들이 사라져 버린 기분이다. 공허함의 바닥에서 깊숙히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이따금씩 네가 해주던 말들이 떠오른다. 내 앞을 스쳤다가 소리없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만 나는 사라지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어쩌면 가라앉길 바라는 멍청한 생각도 포함해서.


혹여,소식을 들은 사람 누군가 나를 섣불리 위로할 생각이라면 꼭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 마음이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이기적일지도 모르는, 타인이 생각하는 순수한 위로의 열망까지 망치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겸허히 받아들이려 노력하듯, 타인도 꼭 그렇게 겸허했으면 좋겠다. 이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나 그대로였으며 내 생의 방향성과 방식은 여전히 변함없다. 변한 건 오직 나였으며, 변하지 않는 것은 단순 내 생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 생을 사랑하고 있다. 동정어린 시선은 나의 생까지 침범하지 않아도 돈다. 마음만 그저 고맙게 받고 싶을 뿐이다.


때론 아무 생각 없이 너무 잘 살고 있다가도, 일순간에 무너지는 나의 삶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것들은 꽤 긴 주기를 가졌다가도 이내 단기적으로 나의 일생을 온통 망치기도 하기에 무섭고 깊은 두려움에 빠져있을 뿐이다. 단어 하나에 죽어버린 나의 생을 어디에서 구원 받아야 할 지 날이 갈수록 고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 네 향 가득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