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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Apr 19. 2020

<천공의 성 라퓨타>

인간은 대지를 떠나서는 살아 갈 수가  없는 거에요.

지브리 스튜디오 거대한 서막의 오프닝

1986년에 제작되어 나온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시작을 알린 영화. 태어나기도 전에 개봉한 영화지만 지브리의 팬인 본인으로썬 <천공의 성 라퓨타> 만큼 애정이 가는 작품도 더 없을 것 같다. 지브리 특유의 감성과 색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몰입할 수 밖에 없는 매력적인 소재, 탄탄한 스토리 라인이 첫 작품에 모두 담겨있다. 지브리의 목적성과 형태,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재성까지 ... 모든 것이 첫 작품에서 드러난다는 게 놀라울 만큼 '재미있는' 영화가 아닐까.


꽤나 무거운 분위기의 연출이었던 전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비해 <천공의 성 라퓨타>는 좀 더 명량한 느낌이 있다. 영화의 OST인 '너를 태우고(君をのせて)'로 시작되는 음악에서부터 전보다는 경쾌하고 발랄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내용 자체도 판타지적 요소가 적절히 가미되어 부담 없이 누구나 볼 수 있게 스토리 라인을 구성했다. 다만, 지브리의 메시지 의식이 그러하듯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제의식을 다루고 있다. 후에도 그렇듯, 지브리가 늘 강조하는 단순한 ‘자연보호’는 일반적인 메시지를 넘어 ‘인간의 기술 우월주의’를 경계하고 단순한 보호를 넘어 ‘세계의 멸망’을 불러오는 인간의 피해를 관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문명과 탐욕에 관한 질문으로 첫 시작을 알렸다.


그렇다면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고 봐야 하는건가? 사실 메시지를 넘어 영화 자체로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문명을 찾아 탐험한다는 측면에서 굉장한 모험가의 로망, 왕가의 후손인 소녀를 지키는 평범한 소년의 사랑, 하늘을 날게 하는 비행석까지 ... 끝없는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진 영화. 주인공은 한없이 선하고, 악의 축은 한없이 악한 전형적인 권선징악식의 스토리지만 애니메이션 특유의 감성임을 감안했을 때 어쩌면 우리가 가장 꿈꾸는 영화 그 자체가 만들어진게 아닐까 생각한다. 색이 유난히 아름답진 않겠지만 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색감을 마주하는 것도 영화에 몰입하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한다.


지브리의 작품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판타지적 요소, 색채가 주는 편안함, 상상 속에 존재하는 세계관 …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회자되는 이유의 중심은 지브리가 가진 특유의 감성이 아닐까. 지브리 작품 속 배경은 하나하나 곱고 아름답다. 수작업으로 진행된 셀 애니메이션 특유의 강점이 여기서 돋보인다. 그래픽 작업을 택하지 않은 고집이 수많은 사람들을 지브리에 빠지게 만든다. 스토리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현대에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를 그렸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와 크게 다른 모습이 없다. 스토리를 통해 주제의식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감독의 깊은 고민이 늘 돋보인다. 두말할 필요 없는 음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지브리의 영원한 음악 단짝 ‘히사이시 조’, 어떤 음악을 들이댄다 해도 그의 음악이 영화에 대체불가임을 알 수 있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오랜 염원이자 꿈이었다. 지금이야 기술발전으로 날 수 있다느니 만다느니 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영화의 배경인 1986년에는 비행기를 제외하곤 뚜렷히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판타지의 실현을 위해 그림을 택한다. 걸리버 여행기 속 라퓨타를 모티브로 '성을 날게하자' 에서 시작된 그의 순수성은 어린 아이들의 생각과 비슷하게 닮아있다. 작중 주인공이 대부분 소년, 소녀로 그려지는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지브리의 작품이 아이들의 환호 속에서 빛나는 영화인가 묻는다면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싶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깨끗한 목적성은 영화를 보는 어른들로 하여금 깨우치게 만든다. 


"대지에 뿌리내려 바람과 함께 살아가자. 씨앗과 함께 겨울을 넘고 새들과 함께 봄을 노래하자. 아무리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해도, 가여운 로보트를 수없이 많이 조종한다고 해도, 결국 인간은 대지를 떠나서는 살아 갈 수가 없어요." ... <천공의 성 라퓨타> 영화 자체의 기능성을 보자면, 지브리의 입지를 알리기 위해 교훈과 메시지 보다는 흥행성과 오락성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를 만들어냈으나 스토리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기계문명의 발달과 인간의 탐욕의 위험성은 부족해 보이지는 않다. 하늘에 홀로 떠있는 신비의 성 '라퓨타'를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탐욕이 결국 자연을 파괴하기 때문에 결국 인간과 자연이 필수적으로 공존해야됨을 강조하고 이야기한다. 이는 지브리의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도 그럴것이 지브리가 이런 작품을 낸 시기는 80-90년대 개발붐으로 인해 무분별한 파괴가 이어지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현실세계 속 개발로 인해 무너져가는 자연을 어른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무엇보다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아이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주인공을 제외한 서브인물들의 개성이 돋보이는 만큼 영화 속 연출에 힘쓰려고 했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환상적인 세계관과 뛰어난 색채감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워낙 시간이 오래된 영화이다 보니 호불호가 갈리는 건 어쩔수가 없는 듯하다. 스토리는 알다시피 흥행성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뻔한 면이 있다. 권선징악한다는 클리셰를 그대로 따랐으니 지루할 법 한 것도 이해한다. 빈티지한 색감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편인데 개인적으로 워낙 호다 보니 무슨 말을 해줘야 할 지 모르겠다. 앞선 스토리와 연출에는 호불호가 갈린다지만, 호불호 갈리지 않는게 있다면 아마 영화의 OST인 '너를 태우고(君をのせて)'가 아닐까. 가사를 보면 알지만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을 담아놓았다는 것을 뒤로 한채, 그냥 음악 자체가 너무 좋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정의로운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 하늘을 날아다니는 성을 배경으로 한 세계관, 소녀와 소년의 풋풋한 로맨스까지 ... 재미없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순수한 눈으로 작품을 그려낸 미야자키 하야오가 '관객이 일상에 꽁꽁 얽매여있거나 하지 못했던 것들에서 해방되어 우울한 감정을 분출하고 생각도 못했던 동경과 순수함과 긍정을 자신 안에서 발견해 조금은 기운차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이라고 말했듯,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보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그 의미를 가지니까 말이다. 다만, 그의 작품 철학 속에서 꾸준히 이야기하는 현대문명의 이기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시초를 읽어내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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