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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Apr 20. 2020

<이터널 선샤인>

Please let me keep this memory.

솔직히 한 번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


사실 처음 봤을 때는 지루한 마음이 컸다. 이해력이 부족한 건지, 재미가 없었던 건지 ... 당최 어떤 내용으로 전개되는지 알 수가 없어 몇 번이나 멈췄다가 재생했다를 반복하면서 봤었다. 심지어 펜을 들고 노트에 사건 순서 전개를 기록하면서 봤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1시간 47분 동안의 전개가 워낙에 들쭉날쭉이다 보니 이게 왜 명작인가 싶을 때 영화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도중에 끊고 싶은 순간이 몇 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 잊혀갈 무렵, 재개봉 소식을 듣고 꽤 오래 뒤에 영화를 다시 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때, 그제야 다시금 영화를 되짚을 수 있었다.


'명작이 왜 명작으로 남는가' 묻는다면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2004년에 개봉된 <이터널 선샤인>, 이 영화가 명작의 반열에 오르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하면 미셸 공드리 감독 특유의 연출력과 빈티지한 색감이 돋보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 전체를 감싸는 푸른 계열의 색감과 장면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전환 효과, 스토리에 짜 맞춰진 장면 연출이 '공드리'답다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영화의 전개가 이래저래 튀다 보니 스토리가 가지는 몰입도가 떨어져 초중반의 지루함을 견뎌내야 하지만 긴 시간 동안 느긋하게 감상한다면 감독을 따라 천천히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본인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한 번으로는 이해하기 정말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두 번 보기에는 충분히, 아주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을만한 영화임은 틀림없다.


헤어진 연인의 기억을 지우고 싶다는 우리 모두의 염원을 담아낸 영화이기 때문에 '이별했을 때 보면 펑펑 우는 영화' 쪽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영화 내용 자체가 이별을 담고 있기 때문에 무리도 아닐 것이다. 다만, 헤어진 연인에 대한 상처를 지우기 위해 기억을 지우는데 과연 추억까지 지워질 수 있을까? ... 이것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 될 수 있겠다. 영화 속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우면 지울수록 더욱 깊어지는 사랑을 느끼게 된다. 기억을 지워가는 중 떠오르는 추억들에 때론 절규하고, 행복해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영화 속 주인공인 조엘(짐 캐리 분)을 따라가다 보면 운명과 인연, 사랑에 관한 철학적 질문에 관객 스스로가 대답해야 한다.


영화를 본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선명히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조엘이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Please, let me keep this memory, just this moment.' 라는 대사가 있다. 제발 이 기억만은 남겨달라고, 이 순간만은 빼앗지 말아 달라는 이 대사가 분명 잔잔하게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절한 절규처럼 들린다. 시간이 추억을 천천히 앗아가는 것과 다르게 조엘은 준비되지 않은 기억을 삭제한다. 말 그대로 '홧김에' 말이다. 그렇기에 조엘이 기억을 지우는 과정은 관객들도 함께 고통스럽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선 차가웠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한없이 사랑스러운 그녀를 누가 지울 수 있겠는가 말이다. 마주친 기억 속에서 그는 도망치며 후회한다. 'I Don't Want This Anymore!' 라고 소리질러도 들어주지 않는다. '헤어진 연인의 기억을 지운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공드리의 답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기억을 지우고 싶은 남자의 기억이 삭제되는 동안 돌아가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분) 둘의 이야기가 역행으로 돌아가며 전개되고, 시간순서가 뒤섞이고, 인물의 구도가 3자에게 넘어가기도 하며 스토리가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내용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장면 전개가 이어지기 때문에 영화의 불친절함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은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두 번을 본다고 이야기 한다. 너무 뻔한 이야기 같지만 오히려 뻔하지 않아서, 거짓말 같은 영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관객으로 하여금 끈임없이 영화 안으로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복잡한 스토리 속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캐릭터의 섬세한 감정표현이 영화를 끌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두 배우의 케미가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 빛난게 아닐까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감독 본인이 가진 연출력도 빛났지만, 두 배우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아마 강렬하게 인상에 남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을 제외하고도 영화의 볼거리가 나름 풍부했다. 앞서 말했듯 공드리 감독 특유의 색감 배치가 그랬고, 서브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랬다. 적절한 미장센 배치 덕분에 장면들이 넘어가는데에도 어색함이 없다는 것 또 매력적이었다. 공드리 감독의 색감 연출력은 따듯함과 차가움에서 공존한다. 때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며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색으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서브 인물들의 이야기 또한 쉽게 놓치지 않는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닮아았기에, 오히려 더 큰 의미를 가진 이들의 이야기에도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영화가 마냥 슬프기만 한가. 아니, 로맨스 영화답게 생각보다 로맨틱하다. 하얀 눈 밭위에서 깨는 장면부터 비 내리는 집안, 기차에서 우연하게 나누는 이야기 ... <이터널 선샤인> 속 묘미는 이런 달달함 속에도 있다. 감독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로 장면 전개가 아름다운 것도 매력있지만, 오히려 현실적인 장면들에서 설렘을 느낄 수 있다. 침대 위에서 키스를 나눈다던지, 배게를 들고 장난을 친다던지, 잠을 깨워 농담을 한다던지 ... 이런 장면들이 설레며 동시에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유별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었던 둘의 헤어짐이 와락 현실적으로 와닿기 때문이다. 


기억을 지웠으나 감정이 남아 결국 서로에게 돌아가고 마는 것. 이것을 과연 해피엔딩이라고 불러야 할까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조금은 그렇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의 마지막도 그렇다, 조엘은 그저 'okay'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서로의 다른 모습이 지겹도록 싫었지만 그것이 동시에 사랑하는 부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서로가 죽을 듯이 미워 이별했다가 다시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것도 깨달았고, 본능처럼 이끌릴 서로에 대한 위험성도 분명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답은 그저 'okay'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로의 지루함에, 서로의 무심함에, 서로의 날카로움에 언젠가 상처 받을 걸 알지만 'okay'인 것이다. 상처와 사랑의 반복이 결국 성숙이라는 것을 본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재개봉이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이야기 하는 <이터널 선샤인>. 몇 번을 봤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매 번 볼때마다 영화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고 느껴져서 횟수 세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별을 겪었던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였던 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언제 보아도 나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혹시 한 쪽이 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에 대한 부연설명을 들으며 함께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16년이 지난 영화이지만 약간의 촌스러움을 제외하곤 세련된 영상미를 가지고 있다. 온갖 화려한 CG로 도배된 현대 영화에 비교하자면 연출력에 어색함이 있겠지만 당시 배경으로 봤을 땐 왜 수작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지 납득이 갈 것이다. 외롭고 심심한 주말에 감각적인 로맨스 영화가 끌린다면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아닐까. 당신이 누군가를 당신의 마음속에서 지울 수 있지만, 사랑은 지워지지 않듯이 이 영화 또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사진 출처 :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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