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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y 07. 2020

<친절한 금자씨>

너나 잘하세요.

구원받을 수 없는 복수에 대하여


박찬욱 감독하면 단연 '복수 3부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복수의 파멸을 이야기했던 <복수는 나의 것>, 복수의 완성을 이야기했던 <올드보이>, 마지막으로 복수의 구원을 이야기한 <친절한 금자씨>. 세 영화가 모두 복수라는 개념에 대한 이렇다 할 만한 총괄적인 관념을 다루고 있지만 각 영화가 가지는 성격과 주는 메시지들은 모두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세 영화를 한 번에 이어보진 않았지만 <올드보이>만큼이나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 영화가 바로 이 <친절한 금자씨>다. 이영애 배우의 '너나 잘하세요'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던 때, 영화를 보고 나서 이 대사 한마디가 얼마나 중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유머러스하고 키치한 감이 있지만 마냥 '재미있는 영화였어!'라고 하기엔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남는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가지는 묘미는 대부분 중-후반부에서 드러난다. 인물이나 스토리에 대한 설명을 모조리 뒤로 미뤄둔 채 전반부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데에 집중한다. 마치 '이건 미스터리한 일이야'라고 이야기하듯 떡밥들을 여기저기 뿌려둔다. 때문에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흐름을 놓치는 순간 알 수 없게 돼버린다. 사건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의 자그마한 연출을 파악하지 못하면 뒷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때문에 지나치게 난해하거나 폭력적이라는 평도 많은 편이다. <친절한 금자씨>도 마찬가지다. '어린이 유괴'라는 소재를 사용했고, 선혈이 낭자하고, 선정적이고, 파괴적이다. 그래서 불편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영화에 집중하도록 견고한 장치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소위 말하는 '떡밥'들을 풀어놓고 회수하는 것이 얼마나 섬세한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덕분에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어설프지 않다. 허무맹랑한 결말도 없고, 미스터리 한 오점도 남아있지 않다.


이러한 노력들은 연출과 색감, 구도, 트랜지션, 영상미, 미장센 등에서 드러난다. 컷마다 정성을 쏟는 게 화면 속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데에 스토리를 제외하고도 분명한 매력이 엿보인다. 이런 것들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좌우한다. 인물을 묘사하고 상황을 설명하는데 말을 덧붙이기보다 소품이나 배경을 활용한다. 영화는 말 그대로 영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이다. 텍스트 같은 과한 부연설명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하게 만든다. <친절한 금자씨>는 이런 영화가 가진 성격의 본질에 집중한다. 영화 내내 들려오는 내레이션이 얼핏 어색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이러한 내레이션도 하나의 도구였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이것저것 유추해서 보는 맛, 주인공을 포함한 각 인물들이 드러내는 감정의 묘사, 상황에 맞게 적절히 어우러진 구도까지 ... 이런 것들을 제외하고 스토리만 보더라도 분명 재미있고 새로운 영화였다.


이 영화가 재미있었던 점 중 하나는 판타지 요소가 가미되었다는 점과 동시에 유머러스한 요소들이 많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진 해당 장면들이 무슨 내용에서 어떻게 연출된 장면인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이런 걸 왜 넣었을까' 싶다가도 '재미있네'라는 생각이 든다. 금자 본인의 꿈이라던가, 딸 제니(권예영 분)와의 화면 연출이라던가 ... 징그럽기도 하지만 감안하고 볼 정도이긴 했다. 유머요소들도 영화 외적으로 접근했을 때 유머 같지 않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주연을 제외한 조연 인물들과의 거친 관계부터 금자의 '블랙코미디'스러운 냉소적인 모습들이 우습지만 ... 뭐랄까, 어딘가 한 군데 이게 맞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인물 이야기가 나와서 덧붙이자면 주연인 이영애 배우와 최민식 배우를 비롯해 조연까지 뭣 하나 부족함이 없는 라인업이었다. 비교적 유명세가 덜했던 당시 배우들이 나와서 보여주는 케미란 ... 이제 다시 볼 수 없지 않을까. 이전작의 주인공이었던 송강호 배우와 신하균 배우도 볼 수 있으니 이런 인물들을 찾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라는 주제는 일상의 분노를 억누르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흥미 있는 주제다'라는 박찬욱 감독의 말답게 영화 스토리의 흐름이 굉장히 흥미롭다. 본격적으로 복수를 계획한 금자(이영애 분)가 어떤 방식으로 준비하고 이뤄내는지, 무슨 장애물들이 금자의 길을 가로막는지,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마무리되는지까지 자연스러운 전개에 관객을 완전히 몰입시킨다. 마치 관객으로 하여금 금자와 동일선상에 서게 만들어 그녀의 감정까지 공유할 수 있도록 말이다. 범죄의 순간에 함께하게 만들면서 이것이 잘못된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응원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러한 지점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계속해서 경고한다. 금자 본인과 딸 제니의 대화 속에서 말이다. '죄는 크고 너무 깊어서', '하지만 죄를 지었으면 속죄해야 하는 거야' 같은 말들 속에 '죄'의 무게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은 관객 또한 흔들리게 만든다. 지었던 죄를 살인이라는 복수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 그녀를 마냥 응원해야 할까.


<친절한 금자씨>는 범죄에 대한 개인/단체의 직접적인 복수를 다루고 있다. 2005년에 개봉한 영환데 2020년 현대 사회에서 메시지를 던진다. 법으로 심판받지 않은 범죄자를 개인/단체가 심판할 수 있는가. 또한 개인이 누명을 쓰게 되었을 때 누명을 쓰게 만든 당사자의 잘못인가 아니면 누명을 쓰도록 협조한 부패한 공권력의 잘못인가. 죄책감은 누구에게서 비롯되고 죄의식은 사멸될 수 있는가. 흥미로운 질문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영화 아닐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범죄들이 다양하고 잔인해지는 반면에, 정작 가해자의 술수로 심판을 비껴가는 경우가 많이 보도되는 현대 사회 뉴스들만 해도 이 영화가 얼마나 원초적인 메시지를 말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15년이나 지난 이 영화가 현대 사회에 주는 중압감이 크다.


죄를 지은 자는 피해자들에게 죽음이라는 벌을 받았다. 하지만 모두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가 되었고, 평범하던 이들은 공모자가 되었다. 이것이 과연 통쾌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자신의 복수심은 미뤄두고 타인에게 양보하는 복수의 기회를 양보하는 것을 이타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니면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책임으로써 모면해보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또한, 누구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의 가책을 미루기 바쁜데 이것이 진정한 복수가 될 수 있는가. 누군가는 '틀림없어, 복수는 성공했어. 벌을 받았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 진정한 복수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 '아니다'라고 끝까지 대답하기 어려운 영화였다. 금자가 그토록 원했던 구원 ... 그녀는 복수를 통해 구원받았는가. 영화에서는 '그토록 원하던 영혼의 구원을 끝내 얻지 못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금자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메시지의 끝을 '복수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이라고 결론 내린 셈이다. 나 또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마찬가지였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13년의 세월을 뒤로 복수를 성공했으니 이제는 새로운 삶이야 하고선 순백색의 케이크에 얼굴을 묻지만 어딘가 한편에는 후련하지 못한 마음이 남는다.


어려운 이야기들을 써놓았지만 이런 메시지들을 무시하고 볼만큼 짱짱한 영화였다. 사실 <친절한 금자씨>를 보고 나서 이해가지 않는 장면들은 검색하고 깨달았다. 결말 부분에서도 결국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꽤 많은 글들을 찾아봤다. 혹시, 영화가 재미있었다면 이러한 과정들을 해보는 걸 추천한다. 스토리 사이에서 의문이 가는 미장센들을 직접 해석하는 것만큼이나 재미있다. 그렇다고 이런 요소들을 꼭 일일이 해석해서 볼 의무는 없다. 영화가 그냥 재미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영화였다. 다만, 앞서 징그럽다고 말했듯 그로테스크한 연출(총 한 발에 손목이 잘리거나, 개 몸에 붙은 사람 머리, 손가락 썰기 등)이 많으니 이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진 않다. 전작들도 그랬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것들이 도드라지게 연출되었으니 말이다.




사진 출처 : 친절한 금자씨 .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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