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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y 02. 2020

<이퀄스>

just remember what this feels like.

잘 디자인되었으나 아쉬움이 많은 남는 영화


모든 감정이 통제되고, 사랑만이 유일한 범죄가 된 감정 통제구역 그리고 혼란스러운 주인공의 비밀 연애. SF세상 속 로맨스라는 배경이 두 말할 것 없이 신선했으며, 그 속에서 피어나는 비밀 연애라는 소재에서 처음부터 혹했었다. 이미 연기력이 입증이 된 두 배우에 대한 기대치 때문에 영화를 접하게 되기까지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드레이크 도리먼스 감독의 이렇다 할 만한 전작들을 본 적이 없다 보니 걱정이 조금 앞섰고, 앞서 본 사람들의 평가가 '지루하다'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어서 선뜻 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미루다가 감독의 비교적 최근 작품인 <뉴니스>를 접하고 나서 이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보고 난 뒤에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게 되었다. 뭐랄까, 이렇다 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으나 시스템을 엿보았을 때 먼 미래라고만 유추가 가능하다. 시작부터 영화는 감정을 가지는 것이 범죄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는 시대를 전제한다. 감정을 가진 사람은 '감정 보균자'로 치부되고, 이런 증상이 발각되면 감정치료를 받게 되고 이 방법으로도 치료되지 않으면 사회가 직접 죽이는 것이 아닌 '보균자' 스스로를 자살하도록 만든다.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이 규율의 이유는 일의 효율성에 있는데 기쁨, 슬픔, 분노, 짜증, 우울 등 모든 감정들이 통제되어야 이에 구애받지 않고 일의 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생각이 결국 이러한 사회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전체적인 설정이다. 영화를 시작하며 영화 속 배경이나 상황들에 대한 설명이 조금 불친절하게 느낄 수도 있는데 영화 속 배경을 디테일하게 설명하지 않은 것은 주인공인 두 배우의 스토리에 집중하게 만들기 위한 연출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스토리의 전개도 대부분 둘을 위주로 돌아가고 외적인 부분들은 생략하거나 가볍게 연출한 경우가 대다수다.


때문에, 지루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편이다. 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영화의 전반적인 컷신이 둘의 대화나 행동을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쉽게 지루하다고 느낄 것이다. 또한, 영화에 '기-승-전-결'이 있다면 기에서 승까지 넘어가는데 이미 영화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까지는 의미 없는 장면들을 남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었던 건, 연출자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나친 클로즈업과 옅은 심도로 화면 자체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다. 중요하지 않은 장면에도 연출 기법들을 남발함으로써 관객의 긴장감을 당겼다가 허무하게 풀곤 한다. 행동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다루는 것이나 옅은 심도를 통해 주인공을 강조하려는 것은 좋았으나 너무 많은 장면에서 이렇다 보니 중요한 지점을 놓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초반 전개와 연출기법에서 집중력을 놓친 것이 아쉬운 영화지만, 막상 도중에 끊어버리기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건 영화가 생각보다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장면마다 감독의 정성이 어느 정도 느껴졌었기 때문에 예술적인 컷들이 많았고, 사진으로 남기면 참 좋겠다 싶은 구도들도 많이 보였다. 무엇보다 색이나 명암을 잘 사용해서 컷들의 효과를 내는 것과 영화가 전반적으로 푸른 색감을 띄는 데에 비해 큰 이질감이 없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영화 속 사회의 분위기가 차갑고 냉혈 하다는 점에서 푸른 색감들이 잘 어울렸었고, 인물이나 건물들의 색깔이 모두 하얀색이라는 점을 보았을 때 영화 내적으로 색감 조절에 신경을 많이 썼구나 느낄 수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전반부와는 달리 주인공들이 푸른 색감에서 벗어나는 장면마다 극의 분위기가 대조된다는 것인데 이러한 능숙한 색감 조절은 결말로 진행되면 될수록 장면들을 돋보이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만약, 스토리의 지루함을 걱정하고 있다면 이런 요소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가 되지 않을까.


감정을 가진 자들이 범죄자가 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세상에서 서로를 기억해야 하며, 사회에서 도망쳐야 했던 두 남녀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와 사일러스(니콜라트 홀트 분)의 감정을 장면 안에 세밀하게 잘 담아놓았다. 장면마다 전개를 길게 늘어뜨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감정상태를 농축해서 전달함으로써 관객을 공감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특히, 영화의 전반부를 넘어서면 위태로운 전개가 이어지는데 여기서부터는 앞선 전반부와 다르게 굉장히 속도감 있는 장면들이 전개된다. 배경음악이나 연출도 아슬아슬한 선을 유지하고, 주인공들의 감정 상태도 더욱 고조된다. 관객들은 앞선 분위기와 다르게 이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앞선 장면들이 지루해서였다기 보다 불친절하게 전개한 장면들이 감정선을 세밀하게 이어주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역설 때문이 아닐까. 두 배우의 연기력에 대해 아쉽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 글쎄 개인적으로 나는 나쁘지 않았다. 영화의 배경 자체가 통제된 세상이라는 점에서 표현력의 한계에 많이 부딪혀야 했을 텐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색하거나 과하다는 느낌 없이 잘 조절되었던 것 같다.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 결말까지 아쉬움이 남는다. 앞선 주인공들의 고뇌에 비해 후반부는 너무 급하게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고 괴로워하다 맞서 싸우다가 후다닥 도망가고 만다. 때문에 '마지막으로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지?' 하고 놓치게 돼버렸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다? 사랑 앞에서 한계는 없다? 영화의 결말을 어중간하게 매듭을 지어버리니 허무맹랑하게 풀려버린 느낌이다. 사일러스는 니아를 기억할 수 없지만 설득 끝에 그녀와 함께 도망쳤다는 점에서 열린 결말이기는 하나 이것도 앞선 스토리들이 기초적으로 탄탄해야 관객 스스로가 여러 가지를 상상할 수 있을 텐데 그냥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느낌이다. 물론, 감정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사랑이라는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에 함께 도망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사랑에 대한 기억의 본능을 강조하는 듯했지만 이것만으로는 결말을 완성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손을 맞잡고 미소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걸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까.


이퀄스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사랑에 관한 논점들이 많이 남는다. 우선,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어디까지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해 묻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 속 설정은 '감정이 통제된 디스토피아'였지만 이 감정이라는 요소를 조금만 뒤틀어 본다면 어느 정도의 한계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감정을 찾은 두 남녀가 극적인 방법까지 준비하며 이겨내려는 둘의 모습은 사랑에 대한 한계가 어디까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사회 속 감정이 통제된다는 것이 과연 불행을 의미하는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위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도 동시에 들었던 것 같다. <이퀄스>는 오래된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킨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국 죽어야 했던 비극적인 운명의 두 남녀가 영화 속 주인공과 묘하게 닮아있기 때문이다. 결말을 보며 기억과 감정 중 어느 것의 사랑을 앞서는가에 대한 생각도 짙게 해 볼 수 있었다. 기억과 감정 둘 다 하나라도 전제하지 않으면 유지되기 어려운 감정이기에 사랑 앞에서 무엇이 앞서는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비록 주인공은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함께했지만 현실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어딘가 허점이 보이는 스토리에 비해, 극단적인 효율을 위해 모든 것이 통제되었다는 세상 속 '이퀄스(Equals)' 동등하다는 뜻에서 시작되는 이 단어가 영화에 서사하는 바만큼은 특별하다. 모든 같은 조건, 같은 배경, 같은 위치 속 인간성은 존중받을 수 있는가.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 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흰색의 옷을 입는다는 점은 영화의 제목 <이퀄스>의 뜻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3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멸망해버린 인류의 한 자락이라는 배경 치고는 너무나 말끔하고 단정해서 어딘가 이질감이 들지만, 불편할 것 하나 없는 사회에서 남들과 다르게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태되어야 하는 것이 과연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자살하는 시체를 치움으로써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이 사회가 과연 정상적으로 기능하는지에 대해서 의문감을 가지게 된다. 또한, 영화 속 죄악이 되는 감정, 남들과 다르게 '감정'을 가지고 '사랑' 할 수 있다는 것은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있는 일종의 탈출구로 묘사되는데 통제된 사회 속 안전하고 보장된 선진국에 비해 자유롭지만 알 수 없는 반도국으로 떠날 수 있는 이 티켓을 쥐는 것이 과연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퀄스>는 두 남녀의 통제된 감정을 잘 그려낸 로맨스 영화임은 분명하다. 다만 주인공에서 벗어나 사회주의적 관점으로 영화를 바라보았을 때 영화는 수많은 물음을 자아낸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보는듯한 기분이었다. 아쉬움이 많이 남은 영화였다. 좋은 배우들과 신선한 소재를 가지고 괜찮은 영화를 만들어보려 했으나, 감독의 미숙함인지 연출의 한 게 때문인지는 몰라도 낮은 평점을 받는 것이 충분히 납득 가는 영화였다. 진한 감동도 없고, 마음에 깊이 남는 메시지나 감정이 남는 것도 아니었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졸작이라는 평을 듣기에는 감독의 정성이 많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실험처럼 짜인 영화 속 배경을 멀리서 3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공감하고 따라가는 것에 대해서 흥미로웠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타 멜로와 다르게 묵직한 메시지에 비해 영화의 전개가 쉬운 편이기 때문에 굳이 시간을 내서 해석해가며 보는 수고를 덜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냥 저냥 흐름을 읽을 수 있으니 편하고도 진중한 로맨스를 좋아한다면 추천할 만하다.




사진 출처 : Equals .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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