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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y 13. 2020

<카페 벨에포크>

누구에게나 추억하고 싶은 시간이 있기에


프랑스 영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닌데, 가끔 한 두 편의 좋은 작품들을 보게 된다. <무드 인디고>나 <가장 따뜻한 색, 블루> 같은 영화들 말이다. 프랑스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비롯되는데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보다 장면으로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다. 소재부터 표현력까지 흥미로운 요소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감정선을 세세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한다는 것도 영화의 몰입도를 높혀주는 좋은 요소인데, 인간 본연이 가진 쓸쓸함, 행복, 슬픔, 외로움 같은 요소들을 유난히 정밀하게 잘 그려내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영화를 접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인데 상대적인 문화적 차이와 규제가 엄격한 프랑스 영화법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취향이 워낙 특이하다 보니 관객들이 '예술영화'로 인식헤 근본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듯 하고, 프랑스 영화법 상 영화 종영 후 2년간은 VOD로 스트리밍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놓치면 사람들에서 기억에서 잊혀지는 게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우연하게 보게 된 <카페 벨에포크> 또한 프랑스 영화인데 개봉 시기를 놓치고 그냥 떠나보낸다면 아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특하지만 따듯하고, 유쾌한만큼 귀여운 감성들이 잔뜩 들어있는 영화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과거를 추억하고 살아간다. 동시에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꿈꾸곤 한다.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잘 할 수 있을텐데' 혹은 '그 시절 참 좋았었는데' 같은 마음으로 모두 과거를 꿈꾸고 현재를 살아간다. 하나, 애석하게도 과거가 추억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이유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번 주어진 시간은 되돌아 오지 않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포장해서 살아간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가장 그리워하는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꿈같은 추억 속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과연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바로 이 영화 <카페 벨에포크>에 있다. 주인공 빅토르(다니엘 오떼유)는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다 결국 아내에게 버림받고 쫒겨나게 된다. 스스로 엉망이라고 칭하던 삶을 바꾸기 위해 '시간 여행'을 현실로 바꿔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보통의 영화들이 타임루프 소재를 다룰 때 시간의 역행을 많이 사용한다. 원하던 때로 돌아가서 원하는 삶을 사는 것. <카페 벨에포크>도 마찬가지지만 조금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 의뢰자가 원하는 시대를 세트로 만들어 배우들을 섭외해 상황을 연출하고 만들어낸다. 의뢰자의 기억에 의존해 대사를 짜맞추고, 작은 이어폰 속 지시를 토대로 타이밍을 맞추고, 상호 피드백을 통해 비도 내리고 분위기도 바꿔낸다. 마치 영화 속에서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내듯이 말이다. 단순 판타지 소재에 질렸거나, 설명이 되지 않는 무작위 설정에 질색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가 일종의 처방법이 되어줄 것이다. <카페 벨에포크>는 주인공의 상황에 관객을 그대로 대입시켜 흐름을 맞춰가고 영화 속으로 관객들을 불러들임으로써 만들어진 시간여행을 통해 주인공을 따라가고 촌스럽지만 익숙한 상황들에 행복감을 느끼면 어느새 주인공 빅토르 만큼이나 영화 속에 푹 빠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겠다.


영화 속 영화답게 따듯한 색감과 음악의 절묘한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듯 하다. '핸드메이드 시간여행' 이라는 표현 답게 영화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에 중점을 둔 듯한데, 현실과 과거의 색감차이가 유난히 돋보이게 한 것도 분위기 조성을 위해 그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이와 별개로 핸드메이드라는 특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완벽하지 않은 재현이기 때문에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부분에서 재미요소들이 돋보인다. 대사를 틀리기도 하고,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이 보일 때면 알게 모르게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70년대의 풍경이 어댔는지 알 수 없지만 최대한 시대의 배경을 살려 정성스럽게 연출한 것인 눈에 돋보였다. 극 중에서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데에도 큰 어색함을 못 느꼈다는 것이 좋은 뜻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지만 없지만 적어도 세련미를 어느정도 살려서 연출했다는 점에서 칭찬해주고 싶다. 추가적으로, 이런 영화들의 단골 소재인 히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것도 나름 큰 재미 요소로 작용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아내 마리안느(화니 아르당 분)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는데 이는 주인공인 빅토르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중-후반부에서 둘의 장면을 직접적으로 교차해서 보여줌으로써 그 차이는 명확해진다. 빅토르가 과거를 추억하고, 투박하고, 낡은 반면, 마리안느는 더 새롭고, 젊고, 신형인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더 젊은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남편과 헤어지기에 이른다.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변명을 일삼는 모습이 불편하지만, 도덕적으로 마냥 그녀를 부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익숙한 것에 대한 변화를 꿈꾸지만, 정작 새로운 삶 앞에서 어울리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 한켠이 씁쓸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마리안느와 빅토르는 현대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20-30대들과 많이 닮아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어쩌면 세대의 문제일수도 있고, 기술의 발전에 따른 고찰일수도 있겠다. 동시에 낡은 것에 대한 환멸을 느끼다가도 레트로 감성에 목을 메고 소비하는 모습은 둘의 모습을 적절하게 섞어놓은 것 처럼 보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지 말고 영화 속 두 인물의 성향을 천천히 따라가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빅토르는 영화 속 공간 카페 '벨에포크'에서 첫사랑을 마주한다. 처음에는 인위적으로 짜여진 상황 자체를 부정하는 듯 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몰입하고 마치 젊은 시절의 자신이 된 것처럼 변화해간다. 결국 사랑이 삶을 이끌어가는 듯한, 마치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러브파워'의 전형적인 전개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주인공인 빅토르를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의 이야기가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큰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앙투안(끼욤 까네 분)과 마르고(도리아 틸리어)의 사랑싸움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영화 전개에 폭죽처럼 작용하는 듯 하다. 가만히 둬도 터질 것 같은 둘의 사이에 스토리가 개입되며 끈임없이 갈등을 불러일어키는데, 마치 주인공이 현재를 재현한 듯한 둘의 모습은 어디선가 있을법한 연인의 모습으로 관객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주인공 빅토르의 사랑 이야기를 더욱 부각시킨다.


영화의 중점이 로맨스에 맞춰져 있지만, 단순 로맨스 영화라고 이야기 하기엔 좀 더 깊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영화 속 대부분의 전개는 주인공의 '첫사랑 재현'을 위주로 돌아가지만 그 속에는 좀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기존의 영화들이 '지나간 시간은 살 수 없다'라고 말하는 반면 과거를 구매함으로써 그 가치를 재현해내는 특별함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포인트이자 의미이다. 과거를 과거로 남겨두는 것 만이 아닌 과거를 통해 현재로 다시 회기함으로써 삶과 사랑에 관한 많은 메시지를 표현해낸다. 당신의 삶 속 권태기에 당신의 삶을 다시 돌아가게 될 할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행복했던 순간에 꿈꿨던 보람과 꿈의 달성 같은 것들이 아닐까. 때문에, 간혹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건 행복했던 순간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 영원히 과거를 반복할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만 한다. 이어가야 하는 삶은 또다른 행복찾기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는 현재를 살아갈 수 없다. 행복했던 때를 인정하고 간직함으로써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당신이 가진 삶의 변화는 과거에서 출발했지만, 진정한 시작은 아마 여기서부터이듯이 말이다.


타임루프, 시간여행 소재의 영화들은 과거의 행복을 통해 현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역설을 가지고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든 없든 현재 살아가는 당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고 이야기한다. 앞서 말했듯 <카페 벨에포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 의미를 작용시킨 듯 하다. 과거를 통해 뭔갈 깨우치고 각성했다기 보다, 과거를 그대로 받아들여 회상함으로써 그 행복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 가장 큰 클리셰 탈피인듯 하다. 그래서 과거의 부족함을 강조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과거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더욱 치중한 듯 하다. 과거를 아름답게 꾸며두어 그 조각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애틋한 일인지 이야기한다. 조연인물들의 다소 난해한 전개가 있고 프랑스 영화 특유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수 있겠으나 어렵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정도이고 극의 전개도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편이니 1시간 55분 동안 별 어려움 없이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기에도 좋고, 부모님과 함께 보기에도 좋은 영화 ... 라고 해야 할까, 내용 자체나 스토리 전개 자체는 괜찮으나 부모님과 함께 본다면 꽤나 민망한 상황이 여럿 연출될 수 있으니 유의하고 보길 바란다.




사진 출처 : La belle époque . From POD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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