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국범근 Aug 21. 2018

나의 가장 젊은 3주의 기록,
바르셀로나 (1)

여행의 시작, “Hola!” “Amigo!” “señorita!

 이 글은 국범근이 2018년 6월 21일부터 2018년 7월 14일까지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3국 여행하며 느낀 바를 기록한 것이다.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야, 탕헤르, 셰프샤우엔, 페즈, 마라케시, 리스본, 포르투, 마드리드. 



프롤로그

2018/06/22

담백하게 쓰자. 멋진 표현을 찾아 버둥거릴 필요가 없다. 나는 공기처럼 뜬다.

날고 있다. 방금까지만 해도 밝은 달과 별 하나가 보였지만 지금 창이 비추는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손 뿐이다.

'이탈로 칼비노'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고 있다. 글 한 입, 생각 한 줌. 평양냉면 한 젓가락 머금고 은은히 퍼지는 육향을 즐기는 것처럼...

떠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 나를 얽매는 끈적거리는 생각과 상황과... 나의 안일함과 두려움, 상처 주며 상처 받으며 성장하기를 주저하는 나태와 안정으로부터도 훌쩍 떠나고 싶어서.

예측할 수도 없고, 꾸며낼 수도 없는... 나와 완전히 다른 맥락 속에서 커간 풍경들과 어울리고 한바탕 씨름하며 울고 웃고 즐기며 성장하고 싶다.

비행기가 조금 흔들리고 있다. 대기불안정을 통과하는 중이란다. 다 통과하고 나면 두바이에 먼저 내릴 게다. 그 전에 두 번의 식사를 하고, 콜라와 사이다와 맥주와 와인을 마셔야지. 그게 지금 나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길일 것이다. 짭짜름하고 고소한 기내식 냄새가 난다.



지치고 두려웠다. 탁한 급류에 휩쓸려 공기방울을 겨우 뽀글거리듯, 그렇게 지냈다. 몇 달인지도 모를 시간 동안. 


내가 누구인지, 무얼 중심으로 도는 팽이인 알 수 없었다. 힘차게 돌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완전히 멈추는 것은 또 싫어서 아주 간신히 돌고 있다는 사실만 유지한 채 지냈다. 비겁하게. 


세상과 사람은 알면 알수록 알 수 없었다. 날선 말의 홍수는 세상을 움직이기는 커녕 내 마음에 생채기나 더할 뿐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도 거북했지만 그것을 아예 거부하기 주저하는 나의 비겁함은 나를 더욱 어지럽게 했다. 


어쨌든... 씨바 도망치고 싶었다. 이 여행은 엄연히 도피다.



<여행의 시작, “Hola!” “Amigo!” “señorita!>


♬ 마이티 마우스- 랄랄라


긴 비행이 끝나고 드디어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다. 으레 여행이 시작될 때는 산뜻한 설렘이 가득할 거라 생각하지만, 한 번 이상 경유를 해야할 만큼 먼 거리를 날아오면 그저 어서 씻고 싶다는 생각 밖에는 나지 않는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자마자 망설임 없이 택시를 잡아탔다. 우리가 3일 동안 묵어야 할 호텔, ‘Leonardo Hotel Granbia’로 가기 위해서. 


내가 여행을 할 때마다 (특히 여름에) 듣는 노래가 있다. 마이티 마우스가 부른 ‘랄랄라’ 라는 노래다. 


"나 오늘 떠날 거야 나를 찾지 말아줘. 

저 뜨거운 태양을 만나러 갈 거야. 

춤추고 노래부르는 여행이 시작된 거야."


여행 ‘뽐뿌’를 제대로 자극하는 신나고 귀여운 가사가 특징인 노래다. 또 한가지 특별한 점은 무려 스페인어가 가사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Hola!” “Amigo!” “señorita!” 


우리 말로 옮기면


“안녕!” “친구!” “아가씨!” 


언어는 그렇다. 모르고 들으면 그저 운율일 뿐이지만 알고 들으면 정보가 된다. 

택시를 타고 바르셀로나의 가장 첫 모습을 보며 달리는 중에 ‘랄랄라’를 듣는데, 스페인어가 포함된 도입부가 비로소 오글거렸다.“안녕”,”친구”,”아가씨”라니… ㅋㅋ

 

아, 나 이제 스페인에 왔구나.


택시 미터기의 유로는 묵묵히 올라만 갔다.


-


 목적지에 도착하니 택시비는 15유로 정도가 나왔다. 유럽 여행의 가장 무서운 점 중 하나는 경제관념이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1유로에 1300원. 원화보다 0을 두 개 더 적게 생각해야한다는 것도 오싹하지만, ‘300원’의 존재를 간과하고 대충 ‘0’ 두 개 더 붙여서 계산하면 큰 코 다친다.


‘15000원이 아니라 19500원이지…’ 


앞으로 3주 동안 이 산수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택시비를 냈다. 15분 조금 넘게 달렸는데 20000원 가까이 나오다니. 이제부터 정말 돈을 아껴 써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잠시… 


아뿔싸, 엉뚱한 곳으로 와버렸다. 우리가 묵는 호텔은 여러 가맹점이 있는 형태로 운영 되는데,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다른 지점으로 와버린 것이다. 이 글을 보게 될 만국의 여행자들이여. 택시 기사에겐 무조건 정확한 주소를 보여주자. 구글 맵스를 활용한다면 완벽하다. 절대 대충 장소의 이름만 얘기하지는 말지어다. ㅠ


우리 호텔이 그나마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도로에 하루 경비를 전부 뿌릴 뻔 했다. 10분 정도를 더 달려 드디어 ‘진짜로’ 우리가 머물 호텔에 도착했다. 


우선 씻었다. 속옷도 갈아입었다. 정말… 너무 행복했다. 씻는 것도 먹는 것, 자는 것 못지 않게 사람의 행복을 크게 좌우한다. 따뜻한 물로 마음껏 씻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그 다음은 한 숨 잤냐고? Never. 우리가 바르셀로나에 온 시간은 오후 1시. 여독을 풀 새도 없이 바로 투어를 시작해야하는 구조의 일정이었다. 20시간 가까이를 꼬박 이동하는 데에 썼으니 피곤이 몰려올 법도 한데 깨끗이 씻고, 바르셀로나에서 꼭 입고 싶었던 꼬까옷으로 갈아 입으니 이상하게 기운이 샘솟았다. 어서 밖으로 나가 낯선 풍경과 햇살과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싶었다. 


 잠깐, 그런데 어디로 가야할까? (…) 사실 이번 여행은 사전에 공부를 거의 안하고 큰 틀만 잡은 채 무작정 떠나 온 거라서 무엇을 해야하고, 하고 싶은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냥 가우디… 카탈루냐… 빠에야… 클럽( ㅋㅋ) 등 파편적인 키워드만 고속도로 휴게소 마냥 듬성 듬성 있을 뿐이었다. 


  평소 신조가 인과에 몸을 맡기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된다는 거라서, 키워드 사이 공백은 여행을 하며 창조적으로 메우자는 막연한 다짐만 들고 이 곳에 와버린 것이었다. 이런 나의 처지에 꼭 맞는 제목을 가진 가이드북, ‘Just go’를 펼쳤다. 일단 카탈루냐 광장으로 가란다. 가라면 가야지. 그럼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모히또 가서 람블라스나 마실라니께.

카탈루냐 광장&람블라스 거리>


 이 곳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 비둘기. 비둘기 세상이다. 이렇게 많은 비둘기가 한 장소에 모여 있는 건 처음 보았다. 크라잉넛이 부른 ‘비둘기’가 절로 생각나는 모습. 

‘비둘기야~ 어딜 가니~ 나와 같이~ 춤을 추자~’

 혹은 한 때 합필갤을 풍미했던 필수요소 


‘비둘기야 먹자~구구구구.’ 


어쨌든 비둘기 외에 다른 인상을 느낄 여유 따윈 없었다. 이 새끼들 나는 법도 까먹었는지 내가 지들 사이를 걸어가든 말든 그냥 두 다리로 대충 어슬렁 거리기만 한다. 아마 내 발에 부딪혀도 날아가기는 커녕 이 쪽 한 번 야리고 다시 지 갈 길 갈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카탈루냐 광장에서의 기억은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던 태양빛과 참을 수 없는 비둘기의 무거움. 너무 무거워서 날지도 못하는 비둘기의 물결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이왕 여행의 시작이라 여기 저기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놀려고 했는데, 이 곳에 주인장이신 비둘기님들께서 고까와 하시는 것 같아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곧바로 ‘카탈루냐 광장’ 바로 옆에 있는 ‘람블라스 거리’로 걸어갔다. 

(걍 가자…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람블라스 거리’는 바르셀로나 최대의 명물 중 하나로 알려진 거리이다. 1.2km 정도 되는 직선 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기념품점도 있고, 꽃집도 있고,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파는 간식 가게도 많다. 어떤 것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그저 휘적휘적 걷고 싶도록 만드는 따스한 거리다. 

저 끝까지 갔다가 다시 이 끝으로 돌아왔다가… 그렇게 두 번을 왕복했나보다. 싱그러움을 더 느끼고 싶어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와 레몬 맛으로.

그리고는 걸었다. 그냥 걸었다. 더 또렷하게 걷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나는 람블라스 거리를 걸었다. 

.

.

.

.


걷다 보니 배가 고팠다. 얼마나 솔직한 나인가! 

무한을 생각하는 와중에도, 비통에 빠져 허우적대는 순간에도 어쨌든 우린 먹고 싸고 자야만 한다. 맛집을 찾는 수고를 들이고 싶진 않았다. 식탁이 밖에만 있다면 어디라도 좋았다. 정말 ‘아무데나’ 골라 앉았다. 이름은 몰라도 꽤 넓직한 부지를 가진 식당이라 ‘평타’는 치겠지 싶은 생각이었다.


‘빠에야’를 먹고 싶었다. ‘빠에야’는 고기와 해산물과, 스페인식 향신료에 밥을 넣고 끓여먹는 스페인식 볶음밥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음식이라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기대하던 것 중에 하나다. 

빠에야는 16유로였다. 옆자리 사람들이 먹고 있는 걸 보니 양이 적지는 않아서 괜찮은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이 끝날 때 즈음 돌아보니 10에서 12유로 정도가 빠에야의 적정 가격이다. 참고하시길) 


 아까 택시에 예상 못한 지출을 했으니 이번 저녁은 좀 검소하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빠에야’ 하나만 주문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음료를 무조건 1인당 하나씩 주문해야한다는 거다. 웨이터 아저씨가 화려한 화술로 음료의 필요성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시는데, 멀쩡하던 입가가 갑자기 말라오고 갈증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래. 맛있는 음식 먹는데 음료수가 빠질 수 있나. 모히또를 각자 하나씩 주문했다. 가격도 물어보지 않고서…

빠에야가 나왔다. 제법 큰 후라이팬에 담겨 나오는데 셋이 먹기에는 좀 부족해 보였다. 


모히또가 나왔다. 내 얼굴보다도 더 큰, 벽돌처럼 생긴 유리잔에 담긴 채로 ㅋㅋㅋㅋ

(이게 뭐시여…) 

나중에 계산서를 확인하니 모히또 가격은 1인당 20유로였다. 밥보다 비싼 모히또… ㅋㅋ 그 분에게 이 날은 ‘운수좋은 날’이었겠지? 가격을 미리 확인하지 않고 덥석 주문한 스스로의 미련함에 속이 쓰렸지만… 그것 때문에 남은 여행까지 망칠쏘냐. 모히또 값은 매몰비용이라 치고, 그냥 지금을 즐기고자 했다. 다행히 식사는 맛있었다. 정말로. 

(당일에 먹은 메뉴와 마드리드에서 찍은 빠에야 사진.)


 빠에야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살짝 알싸하고 독특한 풍미가 해물과 정말 잘 어울린다. 내 생각에 스페인 요리는 대부분 우리 나라 사람 입맛에 잘 맞을 것 같다. 향신료를 많이 활용하고, 쌀로 만든 요리도 많기 때문. ‘빠에야’는 특히 양국 선린우호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음식이다. 어느 날 갑자기 ‘김밥천국’이나 ‘한스델리’에 ‘해물볶음밥’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듯한 친숙한 맛을 지녔다. 


모히또는 내가 알던 그 맛이었지만… 조금 더 씁쓸했다. 눈물을 닮은 맛이라고 해야할까. ㅠ 그래도 가격만 잊으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식사였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거리가 석양빛에 물들어 가는 걸 느꼈다. 저녁 8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이 곳의 일몰은 밤 10시는 되어야 볼 수 있다. 낮이 길다기보다는 저녁이 긴 하루라고 봐야 맞겠다. 오후 5시부터 하교시간, 혹은 퇴근시간의 냄새가 나는데, 밤 9시까지 그게 죽 이어진다. 


여행의 첫 하루가 저물어가는 이 때에 무엇을 해야할까 다시 오락가락 했다. 몬주익 분수쇼가 예쁘다는데 그걸 보러 갈까? 아니면 그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는 바르셀로네타 해변으로 이동해서 거기서 일몰을 볼까? 확실한 결론을 쉬이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저녁 먹은 값을 계산 하려니까 모든 게 귀찮아져서 바르셀로네타 해변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아주 절묘한 권태였다.


바르셀로나 (2)에서 이어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