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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 이야기]

'광여도'(1750년대)_대구, 경산

고지도를 연구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가끔 다른 글을 쓰다가 여기에도 쓰게 되면 삶에서 일이 분리되지 않을듯도 하건만.

그냥 가끔은 정리할 필요가 있으니 쓰는 것이다.

아무도 안 볼 것이니 ^^


고지도를 보면 생각이 드는 것은, 그 시대 그들의 눈높이에서 이 지도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이해해서 그 방식대로 읽어내려면 참으로 쉽지 않을 것인데.


가끔씩 취미로 하는 명리학 공부는 현시대 학문의 방법으로는 인정될 수 없겠으나, 오행이나

10간 12지를 늘상 썼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방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한문공부도 계속되어야 하겠다. 그리고 활자로 된 한문을 넘어서 행초서를 비롯한 글자와 이체자 이형자

상식에 여러 제반 요소가 덧대어 져야 저 아래 종이 한장을 조금이나마 읽어볼 수 있는 것이겠다.


달성아래 경상감영이 보이고 읍치는 생략되어 있다. 서쪽 끝에는 2호선 강창역의 조운창이 표기되어 있고

금호강을 건너가면 성주가 나온다. 자축인묘.. 12지에 따라 동서남북은 각각 묘유묘자 가 된다.

그리고 오방색은 각각 목화토금수를 상직하고 녹적황백흑 을 뜻하게 된다.

어람용이나 최소한 중앙정부 용으로 제작된 광여도는 1750년 전후로 한 영조의 지리지와 고지도 제작에 대한

닥달에 가까운 성취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영조의 광기는 이러한 책에서도 느껴지게 된다. 해동지도, 광여도,

그리고 정상기의 동국지도까지 무수한 지적 발전이 이루어졌고 그가 소원하던 전국지리지인 <여지도서>도 불완전하나마 완성이 되었다. 그는 강희제가 되고 싶어했던듯 하다.

동국문헌비고를 어떻게든 만들게 하고 자신만의 백과사전 세계를 선언해 버렸다.

조금만 지나면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나고 강건성세는 쇠락을 고할 참이었는데...


졸려서 오늘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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