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끄적끄적 13

누구 하나 베이글 만드는 사람 없었네

by 낭만지리 굴비씨



1.

3년 전쯤 제주도 출장을 다녀온 직원이 빵을 잔뜩 사들고 왔습니다. 저는 제주도 하면 으레 감귤 초콜릿이라 여기던 터라, 빵 상자를 받아들며 작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빵이 아닌가.

"영국에서 온 베이글이래요. 이름이 엄청 길던데."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끈적하고 달콤했습니다. 생각보다 맛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그 빵집 선물을 받았습니다. 서울에 지점이 여럿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신문물은 언제나 젊은 직원들을 통해 전해지기 마련입니다. 나 같은 둔한 사람은 그저 잘 받아먹을 뿐, 어디에 그런 '줄 서서 먹는' 빵집이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2.

오늘 저녁, 차 한 잔을 마시며 맛있는 빵을 먹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샀느냐는 이야기가 오갔고, 다른 여러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 분명 여유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무심코 핸드폰을 들었을 때, 뉴스 알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유명 빵집 직원, 과로사.'

주당 80시간. 하루 15시간 근무. 밥도 먹을 시간이 없었다는 기록들. 빵을 만들던 젊은이가 심정지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손에 들고 있던 빵이 갑자기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지금이 정말 2025년인가. 여기가 세계 6위의 경제 대국 대한민국이 맞는가. 하나에 7~8천 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 빵을 만드는 공간에서, 한 사람이 배를 곯으며 일만 하다가 죽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그 사람은 빵을 만들면서도, 정작 빵 한 조각 먹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3.

당나라 시인 장유(張兪)의 시 <잠부(蠶婦)>가 떠올랐습니다. 누에 치는 아낙네의 노래입니다.

"어제는 성 안의 시내에 갔다가
눈물을 옷깃에 훔치며 농촌의 집으로 돌아왔네

온몸에 비단옷을 감싸고 길을 걷던 사람들 중에서
그 누구도 누에 치는 사람은 하나 없더라"

천 년 전 시구가 오늘의 현실과 서늘하게 겹쳐집니다.

찬란한 비단을 두른 사람들 가운데 누에를 치는 이는 없었고, 아름다운 빵을 즐기는 우리들 가운데 빵을 만드는 이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먹었지만, 그 사람은 굶주렸습니다.
우리는 여유를 즐겼지만, 그 사람은 쓰러질 때까지 일했습니다.
우리는 빵의 이름을 물었지만, 아무도 그 사람의 이름은 묻지 않았습니다.

4.

그 젊은이는 이제 어디에 있을까요.
오래전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떠난 젊은 친구처럼, 그곳에서는 부디 배고프지 않기를, 쉴 틈 없이 바쁘지 않기를, 누군가 그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내일도 우리는 빵을 먹을 것입니다.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다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빵, 어디서 샀어?" 대신,
"이 빵을 만든 사람은, 괜찮을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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