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끄적끄적 14

책을 보내는 날

by 낭만지리 굴비씨



1.

이번 주 토요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었다. 아내의 단호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조선환여승람》 영인본, 꼭 찾아야 해요."

이미 오래전 일이다. 아내가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 전질을 빌려 연구하고 논문까지 쓴 뒤, 무인 반납기에 조심스레 넣었던 그날. 사람에게 직접 건네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을까. 한참이 지나서야 연락이 왔다. 한 권의 반납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오늘의 미션은 두 가지였다. 첫째, 책을 찾을 것. 둘째, 돼지우리 같은 서재를 정리할 것.

2.

책에 미쳐 있던 시절이 있었다.

선배들이 이사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쫓아가 버려지는 책들을 구해 왔다. 귀한 책은 옥션에서 밤새 입찰가를 확인하며 경매에 참여했다. 그 시절을 불타는 학구열의 석박사 시절이었다고, 지금은 그렇게 이름 붙일 수 있겠다.

서지학과 관련된, 내가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책을 손에 넣었다고 자부하던 때였다. 《서물동호회회보》 같은 희귀본까지 찾아 헤메고. 월급을 받는 족족, 그리고 카드 빚까지 내어가며 책을 샀다. 아마존이 활성화되고 중국책과 일본책을 구하기 쉬워지자, 나는 더욱 가열차게 목록학 책들을 모았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사는 작은 방 한 칸을 넓힐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불안정한 고용 때문에 도시를 옮길 때마다, 나는 헐거운 가마니꾼처럼 수많은 책들을 놓고 가야 했다. 이사는 그렇게 내 책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수많은 책을 버리고 남은 것이 지금쯤이 아닐까. 그리고 오늘 또다시 바라보니,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 모았던 책들이 참으로 많다.

3.

박사 수료 무렵, 어려운 생계의 시간에 귀인처럼 나를 도와주신 한 교수님이 계셨다. 학교에서 그분의 명성은 묘하게도 자자했다. 아무도 그분과 프로젝트를 하려 하지 않았고, 그래서 생판 모르는 나에게까지 일거리가 흘러들어 왔다.

앞뒤를 잴 때가 아니었다. 나는 감사하며 일했고, 그분과 1년간 함께하며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지리학이 아닌, 인생에 대해서.

그분은 말씀하셨다. "1년 동안 펼치지도, 만지지도 않은 책은 다음 해에 처분할 준비를 합니다."

처음에는 무슨 잘난 척인가 싶었다. 그때 내 좁은 가슴으로는 책을 버린다는 것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성역의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에서야 조금 알 것 같다.

4.

저기, 오래된 사마천의 《사기》가 보인다.

중화서국에서 나온 이 책을 사지 않는 인문학 석사생은 상상하기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 다들 한문 공부를 핑계 삼아 열전체를 학습한다며—사실은 술 마시기 모임이었지만—적절한 저녁 때에 후배들과 백이열전부터 스터디를 시작했던 기억.

지금 생각하니, 왜 굳이 중화서국판으로 공부했을까. 차라리 다른 판본으로 했어도 되었을 것을. 내가 간과한 것은 내용의 본질이 아니라 판본의 권위에 집착했다는 점이다.

내 《사기》는 유난히 열전이 있는 1책을 잘 잃어버려서, 지금 내게는 3질의 《사기》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백이열전만 백여 번 보았을 뿐, 다른 구절에는 관심조차 없이 방치하기를 십여 년 했으니, 태사공에게 죄를 지은 것이고 중화서국 표점본을 시작한 고힐강 선생에게도 면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저 백이열전만 필사해서 보았으면 어땠을까. 굳이 3질의 책을 소유하며 국부 유출을 한탄해 본다.

이문열의 오래된 소설 《젊은 날의 초상》 가운데 "그해 겨울"에 이런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눈보라를 돌파하고 낯선 사내를 따라 바다를 만나는 장면. 그때 그가 칼을 바다에 던지며 말한다.

"내 망집을 던져 버렸다."

나는 읽지도 않을 《사기》 3질을 소유하며, 지식의 총량을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은 지적인 성취가 아닌, 소유에 대한 강박이었다.

5.

무수히 많은 사연의 책들이 나오고, '이런 책도 있었나?' 하는 정 없는 책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두 권이나 샀던 책도 있다. 역시 기억력이 나쁜 것은 예전에도 같았나 보다.

정리가 되어가면서 점차 돼지우리 같던 서가에 빈칸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떤 책에서 뜻밖의 선물이 나온다.

내가 늘 곁에 두고 그리던 책을 열어보니, 내가 써놓은 편지가 들어 있다. 제목은 "미래의 나에게……" 바로 읽지 않고 덮기로 했다. 이런 때 읽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 책은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이었다.

또 다른 책에는 서예 글씨가 들어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물도 나왔다. 어떤 소설책에서 뜯지 않은 우편물이 끼워져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3년 전인 2023년 11월에 개최한 <나무에 새긴 마음, 조선 현판> 특별전 초대장이었다. 참고로 소설책은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서 ㅇㅇㅇ>이다.

수취인은 나 자신.

이번에는 왠지 마음이 뭉클해지며 뜯어보고 싶어진다. 새로운 전시가 한 달여 남았으니까. 지금 봐도 조금은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전시 포스터, 형광색의 개성미가 눈에 띈다. 그때 얼마나 다들 고심해서 만들었던가. 그때의 고뇌와 열정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마음이 따스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선물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 책이나 장소에 이렇게 뭔가를 두는 것을 좋아한다. 스케줄러에도 그렇게 한다. 3년 후 내 생일에 "생일 축하해. 3년 전 전시에 찌들었던 나로부터." 뭐 이런 식으로.

6.

오늘 비우는 것은 "비워야 채운다"라는 명언을 따라서가 아니다.

단지 비우니까 편안하기에 비울 뿐이다.

더 책으로 채울 생각도 별로 없고, 책 자랑 할 생각도 없다. 자료는 인터넷에도 있고, 없으면 없는 대로 써도 되고, 모르면 모르는 만큼만 알면 된다. 사실 책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도 다 아는 것도, 다 활용하는 것도 아니었지 않았던가.

15년 전, 석사 시절, 나의 이러한 수집벽은 극에 달해 있었다. 노트북에는 《사고전서》를 깔아야 했고, 중국 불법 사이트에서 받은 문헌과 사전 프로그램을 스마트폰으로 돌리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불법판을 깔아서 구동시키고, 위키피디아도 노트북으로 인터넷 없이 돌렸다.

이러면 뭔가 더 공부를 원활하게 잘할 줄 알았다.

하지만 기본이 잘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치장에 불과하지 않을까. 《논어》에 '기본이 서야 도가 생긴다(本立而道生)'고 했다. 만일 그런 지적 소유의 꾸밈만이 중요했다면, 평생을 학문에 바쳤던 진인각 같은 스승은 어찌 말년에 《유여시별전》을 집필하며 지식의 본질을 되돌아보았겠는가.

7.

책을 한 구루마 만큼 분리수거장에 가져가는데, 경비 아저씨께 꾸중을 듣는다. 이럴 때는 책을 노끈으로 묶는 것이 예의라고.

맞다. 책에게도 끝내 홀대를 하고 예를 지키지 못했다.

빈 캠핑 수레를 끌고 돌아오는데, 깊어지는 가을 내륙에 갯내음이 나기 시작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갯내음이 아니라 비로소 맡을 수 있게 된 가을의 냄새일지도 모른다. 책 냄새에 가려져 있던, 진짜 계절의 향기.

빈 서가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유난히 따스하다.

그리고 나는 문득 깨닫는다. 내가 버린 것은 책이 아니라, 책으로 가득 채워야만 한다는 강박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진짜 책을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서재 한쪽에 놓인 《입 속의 검은 잎》을 집어 든다. 그 안에 든 편지는 아직 읽지 않았다. 언젠가, 정말 읽어야 할 때가 오면 읽으리라.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를 믿었던 것처럼, 나도 미래의 나를 믿는다.

창밖으로 낙엽이 지고 있다.

나무도 잎을 떨어뜨려야 새봄을 맞을 수 있다지. 나는 오늘, 내 내면의 무거운 짐 하나를 보냈다.



그리고 어제 저녁, 아내가 찾던 《조선환여승람》 한 권은 결국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내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어딘가에 있겠죠. 중요한 건 당신이 오늘 무언가를 찾은 것 같다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제 밤,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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