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끄적끄적 17

사랑방

by 낭만지리 굴비씨



1.

아침의 풍경은 때로 한 편의 예측 불가능한 연극과 같다. 고장 난 거실 등을 고치러 기사님이 오시기로 한 날, 나는 아이들의 등원을 맡기로 했다.

밤새 어떤 꿈의 들판을 뛰어놀았을까. 아이들은 몇 번의 하품과 부스스한 눈 비빔만으로 완벽하게 어제의 에너지를 되찾는다. 마치 지난밤의 달음박질이 오늘의 동력인 양, 집 안은 이내 싱그러운 혼돈으로 가득 찬다. 그 생명력이 마땅히 감사하고 반가운 일임에도, 야근의 피로를 이고 선 아침에는 ‘조금만, 아주 잠시만 고요해 주렴’ 하는 소망이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잠시 한눈을 판 찰나, 첫째가 자신만의 법도로 둘째를 ‘떼찌’했고, 둘째는 온 세상의 슬픔을 짊어진 듯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시계는 오전 7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자 낌새를 챈 첫째도 자신을 방어하려는 듯 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방문 틈으로 고개를 내민 아내의 나무람은 언제나 가장 아픈 곳을 찌른다. 서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2.

아이들이라는 드넓은 우주를 얻은 대신, 나는 집 안에서 ‘나’라는 별 하나를 잃어버렸다. 물론 기꺼이 감내해야 할 일이며, 더없이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일 년에 두어 번, 장모님이 오셔서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동안 내 공간은 거실 소파로 줄어든다. 그때의 나는 마치 ‘잠만 자실 분 구함’이라는 낡은 팻말이 붙은 하숙방에 잠시 몸을 기댄 옛 하숙생이 된 기분이다.

다른 것은 아쉽지 않다. 다만, 쓰고 싶은 글이 떠오를 때 붙잡지 못하는 것, 문득 낡은 악기라도 뚱땅거리고 싶을 때 그러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지난 2년간 내가 페이스북에 눌러쓴 글들은 대부분 그렇게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혹은 머릿속에서 겨우 갈무리해 한밤중 거실 소파에 웅크려 쓴 것들이다. 유독 잦은 오타와 두서없는 문장은 아마 그 시간의 증거일 것이다.

아이들을 차례로 등원시키고 출근길에 오르려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싸늘한 공기가 흘렀다. 거실 등이 55와트짜리였단다. 어제 서재 등을 갈 생각에 18와트와 36와트를 사 들고 온 내게,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저녁에 보자는’ 무언의 예고편 같았다. 아, 우리 교수님 또 단단히 화가 나셨구나.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이럴 때 남자는 갈 곳이 없다. 잠시 혼자 있고 싶은데, 세상에 돈을 내지 않고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공간은 마땅치 않다. 그 순간, 나는 아득한 시간 저편, 조선의 선비들이 왜 그토록 ‘사랑방’을 원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

어쩌면 모든 이에게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함께 있을 때 더 큰 힘을 얻는 사람도 분명 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많은 남자들은, 그리고 나 자신은 그런 공간을 간절히 바란다.

나는 퇴근길 주차장에서 그들을 자주 본다.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이지만, 시동을 끈 채 한참이나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남자들. 스마트폰 불빛에 반사된 얼굴 위로 희미한 미소와 깊은 시름이 교차한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게임, 뉴스, 혹은 누군가와의 대화? 아니다. 그들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차 안이라는 작은 동굴 속에서,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자신만의 시간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아빠로, 남편으로,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내게도 그런 사랑방이 몇 군데 있다. 하나는 이미 말한 나의 낡은 자동차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두 번째 사랑방, 바로 ‘악기 연습실’이다.

내 방 구석에는 먼지 쌓인 기타 두 대와 작은 건반이 있다. 장담컨대 지난 2년간 5분 이상 이 악기들을 만져본 기억이 없다. 한 음을 짚으려 하면 아이들이 달려와 매달리고, 아내는 눈을 흘기고, 나는 조용히 악기를 다시 제자리에 밀어 넣는다. 결국 나는 나만의 연주 공간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는 노래방만큼은 아니어도, 숨어있는 악기 연습실이 꽤 많다. 주로 기타 연습실을 전전하다 문득 피아노가 치고 싶어졌다. 하지만 늦은 밤, 홀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공간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렇게 희망을 접고 지냈다.

4.

소설가 김승옥의 단편 <역사>에는, 주인공이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벌떡 일어나 한밤중 피아노를 쾅, 하고 내리치는 장면이 있다. 겨우 노래 반주나 더듬거리는 실력이지만, 나 또한 그처럼 강렬하게 피아노가 치고 싶어진 밤이 있었다.

그 깊은 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습실 예약 앱을 켰다. 그런데 기적처럼, 지금 바로 예약 가능한 음악 합주실이 하나 있었다. 낯선 듯 익숙한 주소. 지도를 확대해 보았다. 설마, 이곳이?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서 주인공 산티아고는 온 세상을 떠돈 끝에, 보물이 자신의 출발지였던 ㅇㅇ 아래 묻혀 있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나의 지상낙원, 나의 가장 완벽한 피아노 연습실은, 우리 아파트 바로 길 건너편에 있었다. 그토록 멀리 찾아 헤맸는데, 그토록 가까이에 있었는데.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나의 머물 곳은 너였음을…
— 전람회, <이방인> 중에서

5.

사랑방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기만 할까. 조선의 선비들은 안채와 분리된 사랑채에서 손님을 맞고, 책을 읽고, 마음을 닦았다. 그곳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이자, 세상으로부터 잠시 물러나 숨을 고르는 쉼터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사랑방은 필요하다. 어떤 이에게는 시동을 끄지 못한 차 안이, 어떤 이에게는 퇴근길 혼자 걷는 골목이, 또 어떤 이에게는 한밤중의 악기 연습실이 그들만의 사랑방이 되어준다. 중요한 것은 공간의 크기나 모습이 아니다. 그곳이 온전히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냐는 것이다.

아침의 소동도, 아내의 서늘한 목소리도 모두 나의 일상이다. 그리고 그 일상을 기꺼이 짊어지게 하는 힘은, 바로 이 작고 소박한 사랑방들로부터 나온다.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싱그러운 혼돈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나에겐 나만의 사랑방이 있으니까. 그곳에서 나는 온전히 나로 머물며, 부서진 조각들을 가만히 그러모은다. 그리고 내일 아침, 다시 아이들의 아빠로, 아내의 남편으로, 세상의 한복판으로 걸어 나갈 힘을 얻는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공간이,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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