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끄적끄적 16

반짝인다고 모두 금은 아닙니다

by 낭만지리 굴비씨





1.

얼마 전, 마음 한구석이 시리도록 아픈 뉴스를 보았습니다. 강남의 한 병원에서 ADHD 치료제가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하여 아이들에게 무분별하게 처방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많은 이들에게는 그저 “세상 말세네” 혀를 차고는 이내 잊어버릴 사회면의 흔한 기사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 씁쓸한 소식을 쉬이 넘기지 못했던 것은, 실은 저 또한 성인 ADHD 진단을 받고 그 약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그 작은 약 한 알은, 때로는 너무 빠르고 소란스러운 세상의 속도에 보폭을 맞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지팡이와 같습니다. 1등을 위한 지름길이 아니라,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인 셈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절실함인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성적을 올리기 위한 비타민처럼 쓰이고 있다는 현실. 아이들은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심장의 박동을 조절하는 전문의약품을 아무렇지 않게 삼킵니다. 오직 좋은 대학이라는 반짝이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아이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저당 잡혀도 괜찮다는 이 위태로운 욕망은 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2.

이 안타까운 풍경이 과연 오늘만의 이야기일까요. 저는 이 뉴스를 보며, 오래전 책장에서 읽었던 명나라 시대 ‘대나무 닭장’ 이야기가 떠올라 잠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입시 경쟁에 시달린다 생각하지만, 아이를 향한 어른의 욕망이 빚어낸 그늘은 생각보다 깊고 어둡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의 과거 시험은 한 집안이 아이 하나의 인생에 모든 것을 거는 거대한 도박과도 같았다고 합니다.

그 시대의 한 집안은 마당에 커다란 대나무 우리를 두고, 아이를 책과 밥상과 함께 그 안에 가두었습니다. 하루에 외워야 할 분량을 채우지 못하면 며칠이고 꺼내주지 않았습니다. 대나무 창살 너머로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 그 안에서 아이는 어떤 꿈을 꾸고 또 어떤 꿈을 접었을까요. 어떤 아이는 영혼 없는 암기 기계가 되었고, 어떤 아이는 스스로를 파괴했으며, 어떤 아이는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그러면 가족은 또 다른 아이를 낳아 그 끔찍한 과정을 처음부터 반복했다고 하니, 수백 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의 모습과 겹쳐 보여 차마 글자들을 끝까지 읽어내기가 힘들었습니다.

3.

공부만 잘하는 아이들이 만들어 온 세상. 이제는 약의 힘까지 빌려 길러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또 다른 약에 기대 살아갈지도 모를 미래를 생각하면 조용한 두려움이 마음을 무겁게 누릅니다. 그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면 마법처럼 약을 끊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요.
옛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출호이자(出乎爾者)는 반호이자(反乎爾者)니라.’ 그대에게서 나간 것은 결국 그대에게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부모의 욕망이라는 이름 아래 억눌렸던 아이들이 훗날 그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되돌려주게 될지, 저는 그 시간이 염려스럽습니다. 약을 먹으며 자란 세대의 아이들이, 쇠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어른이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아이에게 건넨 것이 약이 아니라 상처였다면, 언젠가 세상은 그 상처를 고스란히 돌려받게 될 것입니다.

4.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 약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빛이 결코 ‘공부를 잘하게 만드는 약’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여린 어깨 위에 그늘을 드리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눈앞의 성적이라는 반짝임에 눈이 멀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짜 금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서양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반짝인다고 모두 금은 아니다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아이의 웃음, 엉뚱한 질문, 세상을 향한 서툰 호기심, 친구와 손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의 발걸음. 그 평범하고도 찬란한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지켜주어야 할 진짜 금이 아닐까요. 성적표 위 숫자 너머에 있는, 아이의 온전한 세상. 그 세상이 병들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 어른의 진짜 역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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