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들어 긴 호흡의 글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논문 같은 거창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짧은 칼럼 한 편을 붙잡고 끙끙대는 날이 많습니다. 특별전 개막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 제게 허락된 시간이란 늦은 저녁 식사를 기다리는 짬이나 퇴근길 버스 안에서의 짧은 사색뿐입니다. :)
저는 어릴 적부터 소위 ‘멍 때리기’의 명수였습니다. 혼자 있기를 좋아했고, 오후 햇살이 깃든 소파와도 말을 걸곤 하던 아이였지요. 아마 그 습관이 남아서인지, 하루 종일 무언가를 생각하고 곱씹는 버릇이 있습니다.
2.
어제도 야근 끝에 늦은 퇴근길에 올랐습니다. 터벅터벅 걸어가 버스에 몸을 싣자, 어디선가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마음마저 맑게 하는 그 향기에 고단했던 하루의 피로가 씻겨나가는 듯했습니다. 역시 인간은 후각의 동물이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에 잠겨 갈 때쯤, 앞자리의 신사 한 분이 장바구니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아뿔싸. 그의 장바구니에는 커다란 대파 한 단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향긋하던 향기는 간데없고, 매운 대파 향이 훅 끼쳐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데, 주머니에서 무언가 만져졌습니다. 자동차 키였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그날 아침, 차를 몰고 출근했던 겁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해프닝 앞에서 저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자동차를 탔더라면 이런 대파 소동도 없었을 것을’ 하고 짜증을 낼 것인가, 아니면 ‘이렇게라도 헤맨 덕에 뜻밖의 난향(蘭香)을 맡아본 게 아닌가’ 하고 웃어넘길 것인가. 저는 후자를 택하기로 했습니다.
3.
살다 보면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인 경우가 있습니다. 앞자리의 신사가 저보다 늦게 내렸더라면, 저는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도 기분 좋은 향기를 상상하며 미소 지었을 겁니다. 그것이 대파인들 양파인들 무슨 상관이었을까요.
문득 3년 전, 제가 기획했던 현판 특별전의 한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석파(石坡) 이하응의 <제일난실第一蘭室>.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난초 향기가 가득한 방. 가장 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지 않고, 가장 향기로운 것은 어디 특별한 곳에 숨어있지 않다는 그 말이, 대파 향기 속에서 비로소 제게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4.
진실을 알기 전까지, 버스 안의 그 향기는 제게 분명 난초였습니다.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던 그윽하고 청아한 향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질문해봅니다. 그 행복은 가짜였을까요? 대파를 난초로 여긴 그 순간의 평화는 거짓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설령 그것이 장바구니 속 대파 한 단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그 순간 제가 느꼈던 평온과 위안은 진짜였습니다. 우리는 늘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실이 무엇인지, 본질이 무엇인지 캐묻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모르는 것도 앎이고, 착각도 진실만큼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파냐 난초냐가 아니라, 그 순간 나의 마음이 어떠했느냐입니다.
자동차 키를 잊어버린 덕분에 저는 버스를 탔고, 그 안에서 뜻밖의 향기를 누렸으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낼 사색의 시간을 선물 받았습니다. 실수가 선물이 되고, 대파가 난초가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제일난실이었습니다.
복잡한 전시 준비로 정신없는 하루도, 야근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탄 버스 안도, 주머니 속 자동차 키를 잊고 헤맨 귀갓길도. 그 모든 순간이 저마다의 향기를 품은 제일난실이었던 겁니다.
5.
오늘도 저는 박물관으로 향합니다. 여전히 긴 호흡의 글은 쓰기 어렵고, 아마 오늘 저녁에도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또 어떤 향기를 만나게 될지, 어떤 사소한 실수가 저를 뜻밖의 세상으로 데려다줄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것이 대파든, 양파든, 진짜 난초든. 그 순간, 제가 느끼는 평화가 진짜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수만 있다면, 삶의 모든 순간은 향기로운 방이 될 수 있음을, 3년 전 전시했던 낡은 현판 하나가 오늘 제게 다시 가르쳐주었습니다.